김재록씨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의 칼날이 건설교통부와 서울시를 향하고 있다. 건교부와 서울시가 현대자동차의 사옥부지 매입 및 연구개발(R&D)센터 건립을 위해 수시로 관련 규칙을 개정한 사실이 김씨의 로비 정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2000년 8월 18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시행규칙인 ‘도시계획시설의 결정ㆍ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도시계획시설 규칙)을 개정했다.
‘도매업에 제공되는 사무소 또는 점포’만 들어설 수 있는 서초구 양재동 231번지 일대의 ‘유통업무설비’지구에 ‘자동차매매업 사무소 또는 점포’를 건립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신사옥 부지를 물색하던 현대자동차는 2000년 11월 2,300억원에 이 부지를 농협으로부터 매입했다. 규칙이 개정이 되지 않았더라면 자동차업체인 현대차가 농협의 부지를 사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건교부는 2년만인 2002년 8월31일 도시계획시설 규칙을 다시 개정, ‘자동차매매업 사무소 또는 점포’를 유통업무설비 지구내 주시설에서 삭제했다. 건교부가 규칙을 2000년 8월 18일 이전으로 되돌린 셈이고 현대차의 양재동 진입을 위해 한시적으로 규칙을 개정했다고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건교부는 2004년 12월3일에도 도시계획시설 규칙을 고쳤다. 유통업무설비 지구인 양재동 부지에 연구시설인 R&D센터 증축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 때도 현대차는 관련 규정이 없어 사옥부지에 유통업무와 관련된 부대시설로 연구시설을 증축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서울시와 서초구도 현대차의 R&D센터가 양재동 부지에 들어서는데 한 몫 거들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서초구는 양재동 부지에 연구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현대차의 요청을 서울시에 전달했고, 서울시는 2004년 5월7일 현대차 R&D센터가 들어설 수 있도록 건교부에 ‘연구시설을 유통업무설비 내 지원시설’로 관련 규정을 개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후 현대차의 R&D센터 건립은 빠른 물살을 탔다. 서울시가 지난해 1월15일 도시계획세부시설 조성계획 변경 결정을 고시한 이후, 교통영향평가, 건축위원회 심의, 환경영향평가 등을 모두 마치고 60여일 만인 4월29일 건축허가를 받은 것이다.
특히 2004년 초 서초구가 서울시에 현대차의 연구시설 증축 허용을 건의할 시점에 산업자원부도 시에 비슷한 제의를 한 것으로 드러나 김씨의 로비가 양재동 사옥 증축과 관련된 중앙부처 및 지자체에 전방위적으로 진행됐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서울시는 또 현대차의 R&D센터 증축 건의 경우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데 반해, 인근 221번지 일대에 지어지는 LG전자 R&D센터의 경우 1년6개월동안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치게 하고 있어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서울시는 “LG전자의 경우 유통업무설비를 연구시설로 바꾸고 부지의 용도자체도 상업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바뀌는 것이어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사항이지만 현대차의 경우는 부대시설에 관련된 ‘경미사안’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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