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류를 불문하고 10여종의 암에 대해 피나 소변만으로 진단이 가능한 꿈의 암 검사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교수와 연세대 의대 금기창 교수팀이 암세포에서만 만들어지는 단백질인 네오노보로 암 환자를 조기 선별하기 위한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300명 환자에 대한 이번 임상에서 효율성이 확인된다면, 피 검사로 조기 진단이 아예 안 되거나 환자를 놓칠 수 있는 폐암, 간암, 대장암 등을 간단히 걸러낼 수 있어 획기적이다.
KAIST-연세대 공동연구팀이 연구한 것은 위암 간암 유방암 췌장암 신장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에서 나타나는 ‘네오노보’라는 단백질이다. 네오노보는 주로 면역관련 세포에서 단백질 분비를 조절하는 물질인 사이토카인의 돌연변이다.
정상세포에서는 사이토카인의 DNA가 RNA를 거쳐 단백질로 만들어지는데, 암세포에서 RNA가 만들어질 때 일부 DNA 부분을 빠뜨리는 현상(alternative splicing)이 일어나 돌연변이 사이토카인 RNA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연구팀이 다양한 암 세포주를 확인한 결과 전립선암에서는 실험한 여러 암 세포주 100%에서 네오노보 RNA가 검출됐고, 유방암의 경우 약 70%에서 검출되는 등 뇌암을 제외한 10여종의 암에서 70~100% 네오노보 RNA가 발현됨을 확인했다.
특히 이처럼 여러 종류의 암에 공통된 ‘표지(marker)’ 단백질은 지금까지 없었던 터라 기대가 높다. 간암에서 알파태아단백질, 췌장암에서 CA 19-9와 같은 표지 단백질 검사가 지금도 행해지지만 정상세포에서도 존재하는 단백질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어서 환자만 선별해내기 어렵고, 환자이면서도 표지가 안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금기창 교수는 “기존의 표지 단백질과 달리 네오노보는 정상세포에서는 아예 발현이 안 되는 것을 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진단 효율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세포주 실험과 환자 임상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실제 진단에 쓰이려면 환자 체내의 암세포가 네오노보 단백질을 만들어야 하고, 이것이 소변이나 피에 포함돼야 한다. 소변이나 피에서 검출되지 않을 경우 암세포 조직을 떼어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기 선별 검사로서 의미가 크게 퇴색한다.
이상엽 교수는 “원래 암 환자의 소변에서 사이토카인 단백질이 검출되는 데다가 네오노보는 보통 사이토카인보다 크기가 작아 콩팥을 그대로 통과해 소변으로 검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 일부 환자에서 확인되고 있다.
네오노보의 발견은 ‘우연의 결과’였다. 이 교수 실험실에서 사이토카인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유전자를 확보하고자 실험을 했는데 예상보다 크기가 작아 염기서열을 분석해 보니 일부 DNA가 누락돼 있더라는 것. 이 교수는 “당시엔 연구 실패로 보고 덮어두었다가 왜 그럴까 궁금해 연구를 계속하다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암세포에만 특이하게 나오는 단백질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표적 치료제나 예방 백신 개발의 가능성도 갖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임상시험을 내년 말까지 마칠 예정이며 학내 벤처인 메디제네스㈜를 통해 이미 특허를 확보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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