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씨 로비의혹 사건과 관련, 거명되는 인사 중에는 단연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눈에 띈다.
김씨가 ‘헌재 Lee 사단’으로 분류됐을 만큼 이 전 부총리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점, 이 전 부총리가 직ㆍ간접 간여했던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김 씨가 수많은 컨설팅 물량을 수주했던 점, 그렇기 때문에 김씨와 이 전 부총리간에 혹시 ‘유착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 등이 제기되는 의혹의 핵심 포인트다.
두 사람의 인연은 DJ정부 출범초로 거슬러간다. 전남 영광 출신의 김씨는 대선 당시 DJ캠프에 합류, 특보 타이틀을 들고 발을 넓혀가던 상황.
이 전 부총리는 정권인수위원회에서 환란수습 실무작업을 담당하는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을 거쳐,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다. 두 사람을 연결해준 이는 이 전 부총리의 오랜 친구인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광주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ㆍ기업구조조정 작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음에도 불구, 당시 이 전 부총리는 JP진영으로 분류(김용환 전 자민련부총재가 추천)된 탓에 동교동 핵심인사들과는 아무런 끈도 없었다. 그 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씨가 이헌재씨를 정권 핵심부의 호남인맥에 연결시켜줬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관건은 김씨가 대표를 맡았던 아더 앤더슨 컨설팅이 구조조정 관련 컨설팅 물량을 사실상 ‘싹쓸이’한 것이 이 전 부총리와 관계가 있느냐는 점.
이와 관련, 이 전 부총리가 김씨를 직접 지원사격했다는 증거는 없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고위층과 가깝다는 소문이 나면 일감은 자연스럽게 몰리는 법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씨가 이 전 부총리와의 친분을 들어 ‘호가호위(狐假虎威)’했다는 얘기는 많이 나온다. 재정경제부의 한 인사는 “정말로 측근이라면 측근이양 행동하지 않지만 김씨는 이헌재 부총리의 개인일정까지 알고 있다는 식으로 측근행세를 너무 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1999년 김씨가 모 은행장에게 부실에 대한 책임수위를 낮춰주고, 금융감독위원장 자리를 제안했다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이 점에서 김씨는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
사실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대표(금감위 초대 대변인), 박해춘 LG카드사장(서울보증보험 전 사장), 정기홍 서울보증보험사장(금감원 전 부원장), 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금감위 전 구조조정기획단 심의관) 등 ‘이헌재 사단’의 면면을 볼 때, 김씨는 확실히 이질적이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실무선에선 이 전 부총리에게 ‘김재록씨의 소문이 안 좋다’는 보고를 여러차례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부총리가 김 씨와 관계를 지속한 것은, 김 씨의 기획력과 파격적 사고를 나름대로 평가한데다 호남인맥 관리를 위한 현실적 필요성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 전 부총리나 김 씨 모두 서로에게 ‘부족했던 것’을 채워줬다는 뜻이다.
“김씨가 이헌재 부총리 보다 진 념 부총리와 더 가까웠다”는 얘기도 있다. 진 전 부총리에 대해서도 측근행세를 했다고 한다. 두 전직 부총리 모두 금전적 수수나 부적절한 영향력 행사는 없었더라도, 김씨의 측근행세를 묵인했다는 책임은 면키 어렵다는 평가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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