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투자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투자로 불과 2년 반 만에 투자비의 3배가 넘는 4조5,000억원을 거둬가게 됐다는 소식에 안쓰러울 정도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인터넷에 오른 뉴스 댓글은 “30년 동안 이룩한 한강의 기적으로 돈 번 건 전부 외국인”이라는 자조형에서부터, “멀쩡한 회사를 부실기업으로 조작해서 5조원을 날리다니, 이게 인간이 할 짓이냐”는 분노형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분노의 목소리는 늘 그래왔듯이, “덤핑으로 (은행을)팔아치운 당시 당국자 모두를 구속하고, (유출된 국부도)그들에게서 추징하라”는 어깃장으로까지 이어진다.
4조5,000억원이라는 돈이 얼마만한 돈인가.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차가 지난해 벌어들인 1조4,000억원(영업이익)의 3배가 훨씬 넘는 금액이다. 현대차는 이 정도 이익을 얻기 위해 직원 5만3,000여명의 노동력(고용문제는 별도로 치자)과 막대한 판관비를 투입해 자동차 170만대, 27조원 어치를 전세계에 팔아야 했다.
그런데 외국 자본인 론스타는 본사와 국내 지사를 포함해 기껏 수십명 규모에 불과한 담당 인력과, 투자원금 1조3,832억원 만을 들여 그 3배를 ‘마술처럼’ 벌어들였으니 어찌 속이 쓰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전말을 차분히 되짚어 보면, 이번 ‘사건’은 탄식과 분노로 뒤엉킨 복잡한 감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우리 경제의 치부를 참담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억을 외환은행이 매각된 2003년 8월말로 되돌려보자. 대우와 현대그룹의 잇단 해체로 그러잖아도 국내 은행의 자산 건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그런데 2003년 들어 외환은행에는 하이닉스사태가 추가되고 외환카드가 급격히 부실화하며 비상사태가 닥친다. 주가가 액면가에도 못 미치는 4,000원 아래에서 횡보했던 사실은 당시 외환은행의 신뢰도가 얼마나 추락했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급한 재무구조개선도 극히 어려웠다. 정부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공적자금 투입을 아예 배제했다. 시중은행들을 증자에 참여시키고자 했으나 대부분 제 코가 석자였고, 더욱이 고위험 투자는 기피했다.
기업 자금은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애초부터 은행지분 투자에 적극적일 수 없었다. 한마디로 국내 투자주체들은 우리 경제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 Risk, Hi Return.고위험 고수익)’ 게임을 벌일 만한 실력도, 배짱도, 여건도 못됐다. 결국 실력부족이 ‘글로벌 겜블러’인 론스타에게 오늘날 막대한 수익을 넘겨준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참담한 것은 바로 오늘이다. 외환은행 지분을 ‘헐값’에 매각한 지 2년6개월이 지난 지금, 중국이나 인도의 은행에서 똑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국내에서 과거 론스타가 그랬던 것처럼 해외에서 ‘빅게임’을 벌일 수 있을까.
외환위기 이래 우리 정부는 틈만 나면 거창한 ‘동북아 금융중심’ 건설 구상을 반복해왔다. 이 구상은 90년대 이래의 지속적 산업구조고도화 추진의 궁극적 지향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독자적인 분석능력이나, 걸 맞는 국내 투자자본을 규합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이면서도 이번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싱가포르개발은행(DBS) 같은 국제금융시장의 마이너 플레이어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경제. 이것이 구호만 요란한 우리 경제의 참담한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장인철 경제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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