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줄이 끊어졌다 치자. 악기점에 가서 “몇 번 줄 주세요” 하면 된다. 하지만 가야금은 그럴 수 없다. 12줄을 몽땅 사서 하나하나 끼워보고 골라야 한다.
각 줄의 굵기나 장력, 명주실을 꼰 회수 등에 일정한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줄이라도 소리가 제각각이니 여러 명이 합주를 하려면 음정 맞추는 것부터 문제가 된다. 그러고도 어떻게 앙상블이 될까 의아스럽지만, 그때그때 연주자의 경험과 감으로 해결해왔다. 가야금 뿐 아니라 국악기가 다 그런 편이다.
규격화, 표준화가 안돼 있으니 정확한 음향 데이터에 따른 작곡용 디지털 음원도 없다. 반면 일본은 전통 악기의 디지털 음원 개발을 진작에 마쳤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극에서 대금 소리를 일본 전통악기 샤쿠하치(尺八)의 음원으로 대체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국악기의 음향 분석이나 음고 측정 같은 과학적인 기초 연구가 앞서야 하지만 이 또한 부족하다. 그래서 국립국악원(원장 김철호)이 악기연구소를 설립, 29일 문을 연다.
과학적인 국악기 연구와 제작, 음원 개발을 맡을 기구다. 잊혀진 고악기나 현재 사용중인 악기의 원형 복원, 기존 악기의 개량, 문양과 부품 개선을 통한 품질 고급화도 주요 사업이다. 장기적으로는 국악기 표준화와 인증제를 실시하고, 국악기 제작아카데미도 만들 계획이다.
국립국악원은 1960년대부터 국악기 개량 사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국악기 음향과 음고에 관한 기초 연구와 고대 악기 복원도 해봤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지 않아 효과가 적었다.
악기연구소 설립은 국가기관이 나서서 국악기를 연구하고 정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는 조선시대 악기도감이나 악기조성청이 한 역할이기도 하다. 악기연구소는 음향학, 악기제작 전문가를 포함한 7명의 연구원으로 출발한다. 국립국악원 산하 정악단 등 연주단과 협력해 연구 성과를 적용하고 실천할 계획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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