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영국 보수당이 마가렛 대처를 사상 첫 여성 당수로 선출했을 때, 진보적 권위지 더 가디언은 “보수당 의원들은 코를 잡고 눈을 감은 채 여성해방운동의 깊은 물속에 뛰어 들었다”고 논평했다.
보수당의 모험은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를 표방했던 당의 전통적 이미지를 회복, 노동당에 빼앗긴 정권을 되찾으려는 승부수였다. 대처는 당 정책노선과도 크게 벗어난 극우적 시장경제 논리를 외치며 경제를 되살릴 대안으로 자신을 내세웠다.
이처럼 대처는 확고한 이념과 카리스마를 앞세워 남성지배 정치의 벽을 넘어섰다. 그러나 언론뿐 아니라 집권 노동당도 대처가 지닌 정치적 자산과 파괴력보다 여성 당수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특히 여성 의원들은 보수당이 먼저 마초(macho)주의, 남성우월주의를 극복한 것을 칭찬했다. 노동당이 선거에서 불리해지더라도 멋진 일이라고 환호했고, 오래도록 야당 당수 자리에 머물기 바란다고 유머 섞인 덕담까지 내놓았다.
●대처 총리의 성공, 여성성과 무관
그렇게 권력 정상에 다가간 대처는 4년 뒤 총선 승리를 이끌면서 1980년대 내내 집권, 노동당을 오래도록 좌절하게 했다. 소련에 대한 강경자세로 ‘철의 여인’으로 불린 그는 무엇보다 노조의 기득권을 허무는데 굳센 의지를 과시, 영국병을 치유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됐다.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가 지도자로 성공한 바탕을 여성성에서 찾는 이는 없다.
대처 얘기를 길게 한 것은 한명숙 총리 후보자를 놓고 정치와 사회가 모두 여성이란 상징성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듯 해서다. 사상 첫 여성 총리의 등장에 대처를 떠올리는 것은 언뜻 자연스럽다. 그러나 상징성에 치우치다 보면 정치와 국정의 실질은 소홀히 여기기 쉽고, 큰 의미를 두는 여성의 정치사회적 지위향상과도 거리 먼 쪽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우리의 총리가 선출된 최고 통치자가 아니기에 상징성이 적다는 뜻이 아니다. 비록 제한된 권한을 갖는 자리지만, 여성의 정치사회적 참여와 지위가 낮은 현실에서 한 후보자의 말처럼 이 땅의 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보다 강고한 남녀차별 인식의 변화를 기대할 만도 하다. 개인적 평가를 떠나 높은 자리를 크게 보는 것이 보수적 사회의 특성이다.
그러나 여성 총리의 상징성이 실제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여왕 통치에 익숙하고 여성 지위가 높은 영국도 대처 총리이후 권력 정상에 근접한 여성은 없다. 여성 의원 비율도 20%에 그친다.
양성평등위원회의 연례 ‘성과 권력’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관리직 공무원의 25%, 지방자치단체장의 16%, 100대 기업 임원의 11%, 고위 법관의 9%가 여성이다. 여기에 비춰 여성 정치인 비율은 높은 듯 하지만 세계 50위 권이다.
여성 의원들은 뿌리깊은 마초주의와, 민생보다 정파적 권력 다툼이 지배하는 정치현실이 원인이라고 개탄한다. 대처는 남성을 압도한 카리스마와 언변으로 정치판을 평정했지만, 다른 여성 의원들은 무력감을 느낄 뿐이라고 토로한다.
●상징성에 매달리는 치졸한 정치권
여성 의원 비율 13%로 세계 76위인 우리의 여건은 훨씬 열악하다. 여성 총리 등장이 오랜 차별적 인습을 허물고 여성의 정치사회적 지위를 실질적으로 높이는데 이바지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와 사회가 함께 국정 현안을 중심으로 논란하는 풍토가 절실하다.
집권세력부터 한 후보자의 정치적 신념과 역량보다 여성 총리의 상징성이 지방선거와 대권 다툼에 어떻게 작용할지 셈하는데 골몰하는 것은 스스로 상징성을 훼손하는 치졸한 행태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대권 다툼에 박근혜 대표를 앞세우려면 남녀차별 인습부터 넘어서야 할 한나라당이 여성 총리를 반기지 않는 것은 영국 노동당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은 때문인지 깊은 속내를 헤아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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