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만났던 곳’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여태 이름도 모르고 드나들었다. 세이지. 멋들어진 필체로 쓰인 ‘Sage’라는 간판이 따로 있다. 그 간판에나 유리창에나 ‘커피전문점’이라는 글자가 또박또박 새겨져 있다. 처음 이 가게를 차린 사람의 희망과 애정이 느껴진다. 근처에 달리 찻집이 없는데도, 그리고 바로 버스정류장 앞인데도, 장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세이지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묻자, “먼저 하던 사람이 지은 거예요”라는 주인아주머니의 심드렁한 대꾸.
창 밖 가로수들의 검은 나뭇가지 위에 봄볕이 담뿍 쏟아지고 있다. 대로 건너편으로 새로 들어선 고층 빌딩들이 보인다. 나 말고 유일한 손님인 한 남자가 유리창에 붙어 거리를 내려다본다. 그는 흰 모란꽃무늬가 찍힌 초록빛 소파에 앉아 있다. 내가 앉은 소파는 세피아 빛이다. 유선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가요가 나지막이 떠돈다.
“가시게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초록소파에 앉았던 남자가 계산대 앞에 서 있다. “사무실에 들렀다가….”“나오기는 나온대요?” “모르겠어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건조하다. 바싹 마른 뒤 먼지가 내려앉은 세이지처럼. 세이지는 향기로운 풀, 샐비어 이파리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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