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정권.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병완 청와대비서실장이 최근 자평한 노무현 정부의 성격이다. 그는 역설적 어법으로 “참여정부는 어떤 정책이든 화끈하고 속 시원하게 풀어낸 것이 없는 진짜 답답한 정권”이라며 경제위기, 민생파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화끈한 경기부양의 유혹을 버텨왔고 남북관계도 6ㆍ15정상회담처럼 화끈하게 풀어내지 못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노무현 정부가 법과 원칙, 과정에 충실하고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기관을 민주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신들이 “화끈하고 화려한 외양은 없었지만 탄탄한 내실, 장기적 비전을 가져왔다”는 자부심을 표명했다.
●성과도 많았지만 말로 갈등 유발
우선 이 실장의 평가는 너무 겸손한 측면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화끈한 업적을 낸 분야도 많기 때문이다. 화끈하게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파했고 과거청산도 화끈하게 하고 있다.
행정수도와 공기업을 화끈하게 지방으로 이전해 지방분권의 틀을 만들었다. 답답한 정권이라는 자평이 다른 의미에서 틀린 부분도 있다. 부정적인 방향의 화끈한 업적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끈하게 이라크 파병을 했다.
철도와 화물연대 파업도 화끈하게 작살냈다. 핵폐기장을 만든다고 화끈하게 부안에 엄청난 공권력을 투입했다. 새만금 강행 등 환경파괴에도 화끈하게 앞장섰다.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농민을 두 명이나 화끈하게 패 죽였고 스크린 쿼터도 화끈하게 축소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노무현 정부가 답답한 정권이라는 평가는 맞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답답한 정권이 된 이유가 원칙과 과정에 충실하고 권력을 민주화했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가장 쟁점이 되고 있고 노무현 정부의 가장 답답한 업적인 사회적 양극화가 법과 원칙, 과정에 충실하고 권력기관을 민주화했기 때문에 생긴 것인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화끈하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도 원칙에 충실하고 권력기관을 민주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전략이 부재하고 이해찬 전 총리 등이 불필요한 말로 한나라당을 자극해 국회를 공전시켰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화끈하고 화려한 외양은 없었지만 탄탄한 내실, 장기적 비전을 가져왔다는 평가에도 동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가 지금은 화려한 업적이 나타나지 않지만 양극화를 해결할 장기적 비전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이다. 그처럼 자랑하던 인사의 시스템개혁이라는 것도 잇따른 코드인사의 잡음이 보여주듯이 내실과 장기적 비전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진짜 문제는 업적과 말의 불일치이다. 업적은 답답한데 말과 언행은 지나치게 화끈해 불필요한 갈등만 야기해 왔다는 것, 그것이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이다.
노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정제되지 않은 화끈한 말로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고 갈등을 만들어 왔다. 게다가 2004년 총선 승리 후 등장한 이해찬 총리 체제에서는 이 전 총리까지 가세해 때로는 스테레오로, 때로는 번갈아가며 화끈한 말로 갈등을 조장해 왔다.
다른 면은 몰라도 이 면에서만은 최악에 가깝다. 최선의 정권은 언행은 답답해도 업적은 화끈한 정권일 것이다. 차선 내지 차악이 언행과 업적 모두 답답한 정권이라면, 최악의 경우는 노무현 정부처럼 업적은 답답하면서 언행만 화끈한 정권이다.
●부드럽고 화합형 총리후보 환영
이제라도 노무현 정부는 소리만 요란하고 성과는 별로 없는 빈 수레의 개혁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화끈한 업적을 못 내고 답답한 정권으로 남아 있을 바에는 이에 맞춰서 말만이라도 함께 답답해졌으면 좋겠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이 독선적이고 갈등조장형인 이 총리의 후임으로 개혁적이면서도 부드럽고 화합형인 한명숙 의원을 총리로 내정한 것은 박수를 쳐 환영할 일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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