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한 여론의 반응이 좋아서 국회 동의를 얻기에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지난 정권 말기에 첫 여성 국무총리 서리가 임명됐을 때와는 딴판이다. 당사자들의 됨됨이 차이도 있겠지만, 여성 지도자에 대한 사회의 눈길이 많이 부드러워진 때문이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것도 기정사실이 돼 있다. ‘여성 정치’ 시대의 본격적 개막이 점쳐질 만하다.
■주류 페미니스트라면 이런 화제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굳이 남성과 달리 부각되는 것 자체가 성역할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
사법고시를 비롯한 각종 국가고시, 사관학교나 경찰대학에서의 ‘여성 약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데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런 한계는 총리 후보에 지명된 한 의원이 일성으로 “딸들에게 희망을”을 언급한 데서도 드러난다. 다만 이상과의 거리를 인정해도, 현실 안의 분명한 변화마저 굳이 간과할 이유는 없다.
■한명숙, 강금실 두 사람의 정치적 부상을 곧바로 ‘여성의 힘’으로 해석하긴 어렵다.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낙점을 받는 수동적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대중(Demos)이 주체가 될 때는 민주정치가 되지만, 겉모양과 달리 대중이 객체나 수단에 머무는 중우정치가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여성 정치를 ‘페미노크라시(Feminocracy)’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성이 주도하는’ 정치가 될 수도, ‘여성을 이용하는’ 정치가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보아도 현재의 실상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어느 정도 검증을 거친 한 총리 후보와 ‘이미지’만 떠도는 강 전 장관을 하나로 묶어 내세우려는 움직임에서 그런 심증은 더욱 짙어진다. 여성의 전진배치를 두고는 누구도 선뜻 시비를 걸기 어렵다. 그것이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역설적 힘이다. 레임덕에 접어든 정권의 국민관심 흡인력 퇴조를 메워줄 수도 있다.
더욱이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이 겪고 있는 정치적 타격을 감안하면, 다음 표적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견제할 만능 카드다.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성공하면 유권자의 균형감각이 남성에게로 기울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그 부(負)의 이미지를 박 대표에게 덧씌울 수 있다. 상식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정치의 계절이 오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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