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이 불법 이민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 가고 있다. 28일부터 미 상원에서 시작되는 불법 이민에 대한 규제 강화 법안의 심의가 직접적인 계기다.
23일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불이 붙은 이민 노동자들의 관련 법안 반대 시위는 2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50여만명이 참여한 거리 행진으로 커졌다. 이날 콜로라도 덴버에서도 5만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히스패닉이 주축이 된 로스앤젤레스의 시위에서 이민 노동자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성조기와 함께 멕시코 국기, 과테말라 국기 등을 흔들면서 "불법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의 일부"라며 "우리를 합법화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위엔 안토니오 바이라이고사 LA시장도 참석, 시위대에 지지를 보냈으며 한인 사회도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평화적으로 진행된 이날 시위에 대해 경찰 조차도 "기념비적인 시위"라면서 "이 같은 규모의 시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7만명이 운집한 1994년 불법 체류자의 정부보조금 지급 금지법안 반대 시위 이래 최대 규모다. 앞서 밀워키에서는 주최측 추산 3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24일 애리조나 피닉스에서는 2만여명이 모였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5일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우리는 미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민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그들은 미국 경제가 활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부시 대통령은 불법 이민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불법 이민자들이 제공하는 노동력은 '초청 노동자(guest worker)'의 형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초청 노동자 프로그램이란 이미 미국에 입국해 있는 불법 이민자들을 등록시켜 합법적으로 고용하자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주장은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도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공화당은 이미 하원에서 불법 이민 규제 강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안이 상원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은 부시 대통령의 '초청 노동자'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법 체류자들에 대해 고국으로 되돌아가 임시 근로자 또는 영주 희망자로서 재신청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 법안에는 20억 달러를 들여 미국-멕시코 국경에 320㎞에 달하는 국경장벽을 건설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와 함께 불법 이민자를 고용한 업체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불법이민 알선 및 송출 등에 관여한 사람들에게도 중벌이 가해진다. 법안에 따르면 교회 등 사회봉사단체 등이 불법 이민자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 조차 문제가 된다.
미 민주당은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의 반대 움직임에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이민 사회를 끌어 안으려는 의도도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공화당이 법안을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은 9ㆍ11 테러 이후 국수주의적으로 변한 미 보수층의 정서에 부합하려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내 불법체류자는 모두 1,11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히스패닉이 618만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중남미 248만명, 아시아계 151만명, 유럽 및 캐나다 63만명, 아프리카 등 기타 30만명 순이다.
현재는 1,2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법 이민에 대한 규제 강화 법안이 통과된다면 이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더욱이 이들이 미국에서 낳아 이미 미 시민권을 갖고 있는 자녀 300만명과도 헤어져야 한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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