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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소방법 시행 두 달 앞으로, "비용마련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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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소방법 시행 두 달 앞으로, "비용마련 비상"

입력
2006.03.2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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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Y학원 이모(45) 원장은 요즘 개정 소방법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다. 5층 건물 중 2~5층을 학원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이씨는 새 법에 따라 5층 외벽에 비상계단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건축 당시 이미 허용된 용적률을 채운 터라 외부에 계단면적을 추가하면 건축법을 어기게 된다. 벽을 뚫어서라도 내부에 별도 공간을 확보해야 하지만 건물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며 건물주는 손사래친다.

그는 “학원을 세우면서 은행에서 빌린 융자금 때문에 쉽게 학원을 옮길 수도 없다”며 “이런 사정을 호소해도 소방당국은 관련 시설을 빨리 설치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개정 소방법 시행(5월30일)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관련 업계가 집단 반발하고 있다.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몇몇 조항 때문에 많은 영세업체는 문을 닫지 않은 한 불법영업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정 소방법

정부는 2004년 5월 기존 소방법을 대폭 강화한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제정, 고시했다. 비상구 설치와 방염 처리 등을 의무화해 화재 발생 시 인명 피해 가능성을 크게 줄이자는 취지다.

개정법에 따라 학원(100인 이상), PC방, 고시원, 노래방 등 모든 다중이용업소는 소화기, 유도등 등 소방시설과 방화시설, 방염물품을 갖춰야 한다.

또 5층 이상의 층과 지하에는 주출입구 반대편에 비상계단(가로 0.75㎙ㆍ세로 1.5㎙ 이상)을 설치해야 하며 마감재는 70% 이상 불연재로 바꿔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설치 권고를 계속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2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5월 말 시행된다.

정부는 바뀐 소방법을 신규 업소 뿐 아니라 법 통과 이전에 건축된 모든 업소에까지 소급적용토록 했다.

개정 소방법 논란

업주들의 가장 큰 불만은 비용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건물 지하에 60평 규모의 PC방을 운영하는 조모(45)씨는 ‘45평(약 150㎡) 이상의 지하 매장은 간이스프링쿨러 설치해야 한다’는 새 소방법 규정에 따라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

설비업자에게 문의한 결과 각종 부대 비용을 제하고도 시공비만 1,000만원 정도 든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업주 부담인 설치 비용은 둘째치고 보름정도 걸리는 시공 기간 동안 1,500만~2,000만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조씨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업체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일방적 방침은 생존권을 포기하란 말과 다름 없다”고 성토했다.

현실적으로 법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학원장 이씨처럼 법 제정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 대부분은 당시 해당 기준에 맞게 피난 시설이나 방염 처리를 했기 때문에 구조를 변경할 경우 다른 법령과의 충돌이 발생한다.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보습 학원을 운영하는 박모(37)씨는 “비상계단을 설치하면 주차장 진입로를 막게 되고 옆 건물의 대지 경계선을 침범하게 돼 공사를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건물주의 거부로 구조변경 공사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리ㆍ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일선 소방관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충북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김모(39)씨는 “현장지도를 나갈 때마다 홍보활동을 강화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업주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다 보면 소방시설 설치를 독촉할 엄두가 안 난다”고 털어놓았다.

영세업자들 반발 고조

소방당국 추정에 따르면 개정 소방법을 적용 받는 다중이용업소는 약 18만개소. 업주들은 개정법 시행을 앞두고 업종별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일부에서는 집단행동 움직임도 나온다. 전국보습교육협의회는 이달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수천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갖고 개정 소방법을 규탄했다.

협회 관계자는 “하루에 소방법 관련 문의가 100여건이 넘게 들어온다”며 “비상식적인 법률로 인해 영세 자영업자들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PC방 업계도 정부의 금연구역 확대 조치에 이어 소방법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조영철 정책국장은 “현재 2만3,000여개 회원 중 80~90%는 아직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대부분의 PC방이 남의 건물에 입주해 있는 영세 업체들인데 당국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다면 폐업 대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앞으로 서명운동과 직능단체를 통한 민원제기 등으로 개정 소방법의 부당성을 적극 알릴 계획이다.

소방방재청 이현영(51) 소방제도운영팀장은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화재 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이번 개정 소방법 시행이 필요하다”며 “다만 유예기간을 연장하거나 대체 설비?갖추면 개정법을 만족하는 것으로 허용하는 방안 등을 관련 단체들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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