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삶과 역사를 그려온 화가 강요배(54)의 개인전 ‘땅에 스민 시간’이 서울 인사동의 학고재 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의 자연을 담은 서정적인 작품들이 관객을 맞고 있다. 홍매, 수선화, 억새꽃, 감나무 등을 그린 것도 있고 한라산 고원의 달밤, 달빛 쏟아지는 바다, 밤 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춤, 어지럽게 떨어지는 동백꽃의 꽃비, 연못에 내려 꽂히는 세찬 빗줄기,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폭포, 작은 화산 폭발로 생긴 깊은 웅덩이 등도 보인다. 현대적 추상화 혹은 한국 전통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그림도 있다.
가로 세로 각각 1m에서 2m에 이르는 대작이 많다. 그 큰 화폭 가득 펼쳐지는 바다, 바짝 잡아당겨 그린 폭포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숨을 멎게 할 만한 기세와 위용을 지녔지만, 결코 위압적이지 않고 정감이 넘친다. ‘고원의 달밤’ ‘별-길’ 같은 작품은 사뭇 몽환적이다.
아크릴 물감의 빠른 붓질로 화폭을 달리는 색채는 예전 작품에 비해 훨씬 밝고 부드러워졌다. 하얀 낮달을 둥글게 에워싼 연분홍 ‘억새꽃’, 연두빛 새 잎과 흰꽃이 은은한 ‘감꽃’ 등은 잔잔하고 따사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4ㆍ3 항쟁 등 제주의 아픈 역사와 풍광을 그려온 그의 기존 화풍은 대체로 어둡고 거칠고 강렬한 것이었다. 세월이 그 예각을 둥글리고 고요하게 가라앉힌 모양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 대해 “강한 명암 대비나 필세의 강도를 줄였다”며 “부드러운 것이 오히려 더 울림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40세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15년째 살고 있다. 전시는 4월 4일까지.
(02)739-4937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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