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간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에게 꽃꽂이를 가르쳐온 80대 할머니가 24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으로부터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았다.
주인공은 국내 화예강사 제1호이자 ‘꽃꽂이의 달인’으로 불리는 임화공(82)씨. 그는 1960년 영국 대사관에서 외교관 부인들에게 꽃꽂이 강습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계속하면서 대사 부인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왔다. 반세기 동안 꽃으로 한국의 정서를 전해온 민간 외교관인 셈이다.
1924년 강원 평강에서 태어난 임씨가 꽃꽂이를 하게 된 것은 병마 때문이었다. 일제시대 경기여고를 졸업했지만, 몸이 아파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그는 정신수양을 하라는 의사의 권유로 일본인에게서 처음 꽃꽂이를 배웠다. “병마를 이기기 위해 만났던 꽃이 평생의 반려자고 되었고, 여든이 넘어 훈장까지 받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꽃꽂이’라는 단어를 선보이며, 꽃꽂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는 59년 미 공보원(USIS) 초청으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이를 본 에반스 영국대사 부인이 60년 꽃꽂이 강습을 요청하면서 임씨는 외교가와 인연을 맺었다. 임씨는 고 육영수 여사에게도 10여년 간 꽃꽂이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강의에 참여하는 대사 부인들의 수도 점차 늘어갔다. 요즘도 매주 금요일 아침 9시면 임씨가 스스로 영국 총리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로 비유하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10 자택의 꽃꽂이 강의실엔 외교관 차량이 줄을 잇는다. 영국, 독일, 캐나다, 노르웨이, 카타르, 오만 등의 대사 부인들이 현재 그의 제자들이다.
임씨는 60년 자신의 이름을 딴 꽃꽂이 모임인 ‘화공회’를 만든 뒤 매년 1~2차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올 2월로 76회를 맞은 전시회에는 대사 부인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임씨는 “꽃꽂이를 가르친 대사 부인들이 너무 많아 모두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제임스 레이니,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대사 부인과 페세린 전 스위스대사 부인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90년대 초 3년 동안 그에게서 꽃꽂이를 배운 레이니 대사 부인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 애틀랜타로 2번이나 초청, 임씨는 그곳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금도 레이니 전 대사 부부는 방한하면 꼭 그를 찾아 식사도 하고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힐 대사 부인에 대해선 누구보다 열심히 꽃꽂이를 한 제자로 기억하고 있는 임씨는 “힐 여사가 나와 함께 꽃꽂이 책을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페세린 전 스위스대사 부인은 무려 5년이나 학습한 최장수 제자로 “작품 실력이 뛰어났다”고 소개했다.
5년 전 심장박동기를 달았다는 임씨는 “꽃꽂이는 외국 친구들을 사귀게 해 준 고마운 매개체였다”며 “건강이 닿는데까지 제자들을 가르치겠다”고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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