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젊었을 땐 파란 옷을 입고 늙으면 빨간 옷을 입는 게 뭐게요?”
의기양양하게 수수께끼를 내는 아이는 풋고추와 빨간 고추가 어떻게 자라고 고추장 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을까.
“너희들 먹는 음식을 이 할미가 어떻게 기르는지 한 번 잘 들어봐, 아주 신기혀.” 옛 이야기처럼 구수한 할머니의 한 해 농사 이야기가 시작된다. 봄에는 밭 갈고 모 심고, 여름에는 감자 캐고, 가을엔 고추 따고 벼 베고, 겨울엔 장 담그고….
“고추가 빨갛게 익었어. 고추 모종 심고 풀을 맬 때는 힘들어도 이렇게 잘 익은 고추를 거두면 기분이 좋아. 아들네 딸네 한 포대씩 보내야지. 자식 손자 생각나서 추석이 언젠가 자꾸 달력을 보게 돼”할머니의 말씀에는 농사 짓는 고단함 속에서도 수확의 기쁨, 자식 손자들에 대한 사랑이 폴폴 일어난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얼굴이 떠오르고 그 마음이 느껴진다. 그땐 왜 투정만 부렸을까.
그림책을 펼치면 할머니가 바로 앞에 있는 듯 선명하다. 몸뻬 바지의 허름함이 정겹고 얼굴 가득한 주름이 푸근하다. 밭 가는 소 잔등의 땀내와 여름철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의 짙푸름, 누런 들녘에서 추수하는 농부의 분주한 손길이 생생하다. 감자 캐는 할머니의 웃음은 세상 그 어떤 미소보다도 넉넉하다.
동ㆍ식물 도감을 그려온 이제호 화백이 강원도 산골에서 2년 동안 직접 농사일을 도우며 사계절 농촌 풍경을 아름다운 세밀화와 글로 담았다. 또 벼ㆍ고추 농사 짓는 법, 장 담그기, 호미 지게 도리깨 등 농기구, 절기와 세시 이야기까지 농촌 생활에 대한 정보도 그림과 함께 실었다.
임현주기자 hjim41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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