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길을 꿈과 욕망의 지향이라고, 그 성취와 좌절의 흔적이라고 했다. 하여 그들은 길을 나섰다. 그 지향과 좌절의 흔적을 따라, 흔적들이 품고 있는 주름들을 찾아.
그리고 이제 막 돌아온 그들은, 여기 이렇게 또 하나의 흔적을, 길처럼, 남겼다. 미술가 김태헌씨와 문화비평가 마인황씨의 글과 그림과 사진이 어우러진 책 ‘1번 국도- 평택에서 임진각까지’(그림문자 발행, 1만2,000원)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것을 보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조금씩 다른 자신의 삶을 드러내며 살아왔다. 그런데 세상은 어느새 중심을 향한 목소리만 높인 채 다양한 삶의 모습을 쓸어내고 있다. 이제 어딜 가든 그렇게 쓸어낸 빈 자리엔 똑같은 풍경이 껍질처럼 반짝이며 서 있다. 오산 하늘 아래도 예외일 리 없다.”(39쪽) 그들은 그 ‘똑 같은 풍경’의 번쩍거리는 껍질 위에 ‘사라져간 사람들의 꿈’을 그리며 나아간다.
가령 그들이 평택의 푸른 하늘을 찢으며 나는 전투기를 보고 ‘구멍 난 하늘’이라 할 때, 미군기지 넓혀주느라 강제수용 당한 황새울 들녘의 세찬 바람 앞에 고개를 숙일 때, 어두운 밤길 마을 외곽을 밝히는 ‘럭셔리한’ 여관의 휘황한 네온사인을 마주할 때, 그들은 “빨리빨리, 뻣뻣하게 냅다 달려온” 이 나라 근ㆍ현대사의 불행과 그로 하여 버려지고 사라져간 가치들, 의미들, 사람들, 그리고 꿈들을 더듬는다.
높게 넓게 팽창하는 도시 건축물들의 얼치기 풍경에 밀려 본디 ‘스케일’을 잠식당한 수원 화성 앞에서는 “섬세하게 변주하는 안목”을 상실한 이 시대의 미의식을 안타까워한다.
도시공간에 즐비하게 늘어선 휘트니스 요가 헬스…간판들. 이들의 눈에 우리가 사는 도시란 “(조작된 집단욕망으로 하여) 자신의 육체가 타인을 통해 관리되는 곳”이고 “다양한 삶의 사건을 폐기시키고 그 자리에 은폐된 하나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공간이다.
이들은, 처음과 끝을 한 번은 비틀어야 완성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 공간의 덫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상을 자주 엎어치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것은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유니크한 자기의 시선을 넉넉하게 비쳐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자율적인 존재이므로…”(80쪽)
김태헌씨는 사진과 그림으로 길의 풍경과 주름들을 담았고, 두 필자는 번갈아 결 고른 문장으로 그 풍경과 주름의 의미들을 썼다. 두 사람은 이 봄이 끝날 즈음 1번 국도의 또 다른 흔적을 찾아 전남 목포로 내려갈 참이라고 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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