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슈툰와레이(파슈툰 정신)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은 기독교 개종자를 용납할 수 있을까.
한 아프간 남성의 기독교 개종을 두고 서방 세계가 신봉하는 종교의 자유와 아프간의 이슬람 원리주의가 격렬히 충돌하고 있다.
제2의 마호메트 만평 사건으로까지 불리는 논란의 주인공은 올해 41세의 압둘 라만. 1990년 기독교 구호단체에서 일하며 코란 대신 성경을 택한 그의 개종 사실은 전 부인과 자녀 양육권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최근 법원에 전해졌다.
코란에 근거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는 무슬림이 개종할 경우 사형에 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아프간은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 엄격하고 원칙적인 파슈툰와레이를 자부심으로 삼고 있어서 라만의 ‘커밍 아웃’은 종교적 쿠데타로 일컬어지며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를 기소한 검찰은 라만을 세균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하하며 사형을 강력 주장했다.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정부와 달리 이슬람 원리에 충실한 독립성을 고수하고 있는 법원도 라만의 변절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안사룰라 마울라비자다 대법관은 “아프간은 이슬람 국가며 사법부는 다른 나라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판결을 내릴 것”이라며 이슬람 원칙에 따라 사형을 선고할 것임을 시사했다.
라만이 사형에 처해질 경우 탈레반 부활 조짐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아프간 파병국들은 “인권 탄압을 용인하는 것이 민주화인가”라는 돌팔매를 맞아야 할 처지다. 미국 그리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라만의 석방을 주장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독일 야당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명시한 아프간 헌법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원조를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무슬림 성직자들이 “변절자를 풀어준다면 우리가 직접 그를 처형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에서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23일 전화까지 걸어가며 라만 석방을 강권하고 있어 진퇴양난이다. 법원은 “라만의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며 최종 판결을 유보한 상태다. 23일에는 캐나다 이탈리아 외교관을 통해 “사형 선고는 없을 것”이라는 정보도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무능력을 이유로 이혼당한 라만은 15년 전 일자리를 구하러 이교도 단체에 합류해 파키스탄 독일 등을 떠돌다 최근 아프간으로 돌아와 양육권을 주장, 법원까지 가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22일 “라만을 둘러싼 갈등은 아프간이 서방 세계의 도움을 등에 업고 재건을 추구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사상 충돌을 상징한다”라며 “헌법과 민주주의, 이슬람 정신 등 양립할 수 없는 가치관의 갈등은 이제 시작”이라고 분석했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