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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佛작가 로랑 고데 장편소설 '스코르타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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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佛작가 로랑 고데 장편소설 '스코르타의 태양'

입력
2006.03.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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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탕자의 귀향, 그 사내가 돌아왔다. 이탈리아의 땅끝 마을 몬테푸치오. ‘공공의 적’ 마스칼조네는 그예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죽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의 마지막 그 반나절 동안, 15년을 꿈꿔 온 한 여인과의 짧은 사랑으로 사생아 로코의 씨를 남긴다.

다섯 세대에 걸친 스코르타 집안의 연대기, 프랑스 작가 로랑 고데의 장편소설 ‘스코르타의 태양’(김민정 옮김, 문학세계사, 9,400원)은 세상을 향한 독기로 가득 찬 사내의 기묘한 복수극으로 시작된다. 마스칼조네(제1대)와 로코(제2대)의 시대, 사람들의 욕설 세례와 돌팔매질이 딱 어울렸던 ‘망나니 집안’이자 ‘마을에 내린 천벌’스코르타가(家)는 카르멜라(제3대)의 세대에 이르러 몬테푸치오의 건조하고 팍팍한 토양에 뿌리내린다.

가게를 일으키고, 땅을 일구고, 파도에 맞서며 스코르타들은 약탈과 살인으로 얼룩진 전대(前代)의 업을 씻고 비로소 몬테푸치오와 화해하게 된다. 지중해의 하늘이 저주처럼 쏟아내는 마른 뙤약볕 아래, 저주 받은 성(姓) 스코르타들의 가족애는 차지고 끈끈하다.

살인 실연 조난 이별…, 잇단 운명의 저주 앞에서 스코르타들이 힘겹게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가족’이다. “올리브 나무가 한 열매에서 다른 열매로 해마다 생명의 사슬을 이어가듯”(303쪽) 아버지가 딸에게, 삼촌이 조카들에게 스코르타에 어울리는 인생의 지혜와 가문의 비밀을 전해준다. 로랑 고데의 언어는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물기 없는 남부 이탈리아의 메진 땅으로 스며들고, 나약한 인간의 일상을 지배하는 잔인한 운명에 관한 성찰이 “고열에 시달리며 신음하는 길가의 돌덩이”(13쪽) 하나 하나에 얹힌다.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불꽃같은 삶을 나직하고 담담한 서사로 풀어가는 로랑 고데의 이 ‘우직한’ 소설은 2004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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