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병완 비서실장을 불렀다. 그리고 “오늘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과 오찬을 함께 하겠다”고 했다. 한 의원과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을 놓고 열흘 동안 장고(長考)를 하다 여성 총리 후보자를 택하는 순간이었다.
앞서 노 대통령은 9시쯤 이 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김완기 인사수석 등을 불러 총리 인선에 대한 마지막 보고를 들었다. 정치권 동향과 인사 검증 결과도 보고됐다. 이 때도 노 대통령은 의중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회의 후 한 후보자 지명을 알게 된 이 실장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오후 2시 발표 직전까지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최종 낙점자가 누가 될 지에 대해 엇갈린 관측이 나왔다. 특히 한 의원(음력 3월24일)과 김 실장(양력 3월26일)의 생일이 인접해있어 “24일과 26일 중 어느 날이 더 길일인지 지켜보자”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총리 지명처럼 인선 기류가 오락가락했던 적은 별로 없다. 김 실장이 유력했다가 뒤이어 여성 총리론이 급부상하는가 하면 막판에는 김 실장과 한 의원이 대등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노 대통령이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고 말했고 청와대는 이를 “그만큼 고심이 깊고 크다”는 주석을 달았다.
하지만 인선 기류의 변화를 고민으로만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정치적 승부를 즐겨 하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한 의원과 김 실장이 시차를 두고 부각된 데는 고민 이상의 정치공학이 있다고 봐야 한다. 야당의 반응을 저울질해 보고 총리 지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혼선이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특히 “무엇보다 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한다. 임기 후반기의 국정 안정과 지방선거를 고려, 무난히 인준을 받을 수 있는 후보를 고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는 두 가지 카드를 흘리며 야당과 여론의 반응을 떠보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야당을 오락가락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초 국세청장과 검찰총장 후보를 복수로 발표했을 때와 비슷한 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전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김병준 실장이 유력 후보로 부상했을 때 이병완 실장이 굳이 “정치인이든 아니든, 남성이든 여성이든”이라면서 원점 재검토 입장을 밝힌 대목은 되새겨 볼만 하다. 여성 총리 구상이 서있는데 청와대 참모진들과 언론이 김 실장으로 대세몰이를 하는 것을 방치할 경우 나중에 방향을 틀기가 어렵다고 판단, ‘여성 총리’라는 메시지를 던지게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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