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파란 하늘이라고 불러주세요. 비가 온 뒤 나타나는 그 맑은 하늘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마음도 깨끗해지지요? 저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 별칭을 파란 하늘로 정했습니다.”
고층 건물에 에워 싸인 서울 강남의 도심 사찰 봉은사. 밤 아홉시가 훌쩍 넘은 시간, 사찰 내 시민선방에 불자 50여명이 둥글게 모여 자기 소개를 한다. 한 사람씩 차례로 일어나, 상대방이 불러줬으면 좋을 자신의 별칭을 말하는데 ‘파란 하늘’씨도 그 중 한명이다. 깜깜한 밤 길의 길잡이가 되고 싶다며 ‘북두칠성’이라 불러달라는 이가 있었고, 누구는 있는 듯 하지만 없고 잡힐 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를 더 이상 믿지 않겠다며 ‘아지랑이’라고 불러달라 했다.
조계종 ‘간화선’(看話禪) 입문 프로그램 둘째 날인 21일 밤 봉은사의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진행되는데 첫째 날(14일)은 안내 시간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날이 처음이다.
간화선은 화두(話頭) 하나를 붙잡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는 한국 불교 고유의 수행법이다. 동남아와 일본의 불교가 단계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과 달리, 간화선은 화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 어느 순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게 특징이다.
불력이 높은 고승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얼마 전부터는 일반 불자도 꼭 한번 배우고 싶어한다. 한 신도는 “간화선을 오래 한 스님을 만나면 삶의 방향 등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며 “간화선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고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욕구에 맞춰 조계종은 간화선을 대중화하기로 했고, 지난해말 종단 차원에서 초보자 프로그램을 개발해 봉은사에서 진행하고 있다. 봉은사 프로그램이 조계종 제1기 간화선 입문 과정인 셈이다.
이날 참석자는 연령(20~60대)도, 직업(학생, 회사원, 자영업자, 한의사, 연구원)도 다양했고 함께 한 부부도 있었다. 이진화(46)씨는 “사람이 고민하는 것은, 희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인데 이전에 간화선 시범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종복(54)씨도 “간화선은 능력이 뛰어난 선승들만 하는 줄 알았다”며 “살다 보면 다른 사람과 부닥칠 수 밖에 없는데 이번 교육을 통해 그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배우고 싶다”고 했다. 강사로 나선 조계종 선지도자 황수경씨는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마음을 늘 안정되고 평화롭게 유지하려면 평소 훈련이 필요한 데 그것이 바로 간화선”이라고 말했다.
모임이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각자 가장 고민하고 힘든 것 혹은 가장 바라는 것을 하나씩 생각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혹은 이루기 위해 매일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해서 다음주 화요일 저녁에 다시 모여 이야기 하자는 것이다.
봉은사 간화선은 5월16일까지 매주 화요일 밤 진행된다. 조계종은 4월 중순 조계종 중앙신도회, 그리고 올해 하반기에는 조계사 불광사 등에서도 입문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점차 전국으로 확대시킬 계획이다.
▲ 조계종 입문서 출간 "난해한 용어 풀어드려요"
간화선은 무엇일까. 그리고 생활 속에서 쉽게 간화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간화선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을 위해 조계종 포교원이 ‘간화선 입문’을 냈다. 간화선 지침서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이 지난해 출판됐지만 다소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쉽게 풀어 쓴 것이다.
간화선은 화두를 가지고 끊임없이 의심을 일으켜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 화두는 ‘이뭣꼬’ ‘마른 똥막대기’ ‘뜰 앞의 잣나무’ 등 1,700여개나 된다.
책은 간화선을 하면 번뇌를 다스리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화두 붙들기는 단 5분이라도 좋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시간, 장소의 제약도 없어서 출퇴근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해도 좋다. 초조, 불안, 근심, 걱정이 줄어들고 의식이 맑아지면서 스트레스나 괴로움이 사라진단다. 8,000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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