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제부는 1~3월 ‘미국의 동맹국들’ 시리즈를 내보냈다. ‘초강대국과 동맹하는 법’을 탐구해보자는 뜻이었다.
국제부 기자들이 가본 나라는 미국이 “항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 보는 폴란드, 일본, 호주였다. 결론은 이런 나라들에서도 미국과의 동맹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항구적 고민거리라는 것이다.
폴란드 여론조사는 60%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다. 그래도 폴란드는 이라크에 1,400명을 파병했다. 폴란드가 무작정 미국만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지만 경제는 유럽연합(EU)에 기대는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호주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까지 미국에 보험을 들기 위해 군사를 보냈다. 1976년 “더 이상 미국의 뜻에 따른 해외 파병은 없다”며 ‘자주 국방론’을 꺼내 들었다가 다시 미국에 줄을 서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지금은 안보에선 미국의 눈치를 보지만 경제는 중국에 눈독을 들이는 이중행보다.
미일 동맹도 일본 내에서 모두가 찬성하는 찰떡궁합은 아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일본에 대한 공격이나 침략을 자신의 일로 생각해주는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 밖에 없다”고 호소하지만, 주일미군 기지 재편이 걸려있는 일본 지방자치단체 55곳 중 44곳은 기지에 반대한다.
한국의 외교ㆍ안보 엘리트 사이에 벌어졌다는 자주파와 동맹파 싸움과 흡사한 것도 실은 일본 외무성의 해묵은 논쟁이다. 미일 안보조약의 주일미군 주둔 목적인 “일본 및 극동의 평화와 안전유지”에서 ‘극동’의 해석 문제다. 미국은 극동을 아시아ㆍ태평양으로 확대 해석하기를 원해왔다.
일본 외무성의 북미국은 미국에 동조했지만, 조약국은 엄격히 축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대응 논쟁이다. 어느 나라나 미국이 자기 나라만 지켜주기를 원하지 미국의 전쟁에 끌려들어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일본 게이오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교수는 시리즈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그는 “전략적, 실용적인 외교의 결과로서 친미는 적절한 선택이지만 지금의 친미는 이데올로기처럼 변해 어떤 상황에도 미국에 붙겠다는 입장”이라고 일본의 친미 외교를 비판했다. 친미가 이데올로기처럼 변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반미도 이데올로기처럼 변하면 안 될 것이다.
미국에 대한 항구적 고민과 내부 갈등은 심지어 북한의 소설에도 나온다. 1997년에 출간된 ‘력사의 대하’에서 북한 군 간부는 대미 외교를 놓고 “그렇게 시간만 끌게 없이 탁 차버리고 말던가 한방 꽝 하고 쏴 갈기고 말자는 것입니다”라고 외교관을 힐난한다. 외교관은 “려단장 동무, 외교는 외교로서의 특성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탕탕 쏘는 게 아니지요”라고 대꾸한다.
결국 자주냐 동맹이냐는 특별히 유별난 새 논쟁거리가 아니었다. 한쪽만이 홀로 가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한쪽이 다른 쪽을 포섭하거나 적어도 양립 또는 병행한다는 것이 국제부 시리즈의 시사점이다.
이런 것을 놓고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기밀문서를 폭로해대거나 파벌싸움을 해대는 것은 촌스럽고 걱정스럽다. 이래서는 앞에 인용한 소설에 나오는 “외교부의 정예팀이 공격전뿐만 아니라 전술전, 지혜전도 잘 벌리고 있다”는 칭찬을 듣기는 어렵다.
신윤석 국제부장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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