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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총장 선출과 대학의 자유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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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총장 선출과 대학의 자유정신

입력
2006.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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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많은 대학들이 총장 선거로 분주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도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아직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관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는 ‘총장 직선제는 삼류 민주주의다’라는 제목의 사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총장 직선제는 3류 민족주의?

대학에서 총장을 뽑는 일에 왜 사회가 관심을 갖고 신문 사설에서까지 왈가왈부 하는가? 그것은 대학이 한 사회의 지식과 정신문화의 수준, 그리고 지적 전통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고도의 지식 수준이 요구되는 미래 사회 안에서 대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기에 대학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된다.

인간이 가진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 눈앞의 현실적 이익과 목적을 넘어서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다. 나아가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추상적 가치와 정신의 자유를 위해 생명조차 감수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이러한 인간적 특성이 제도화되어 있는 기구이다. 현대적 형태의 대학의 기원은 서양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은 밑으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인가, 아니면 교회와 국가라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생겨난 것인가? 대학은 사회의 직업적인 요구에 맞추어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순수한 지식 탐구와 교육의 목적을 갖고 생겨난 것인가? 아마도 대학은 이렇게 서로 갈등하는 여러 면모들을 다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이라는 제도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정신의 자유와 지식 탐구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열망을 해소시키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주와 자율에 대한 요구는 교황과 국왕의 권력으로부터 광활한 자유의 땅으로 도피하였던 중세의 지식인들과 학생들로부터 태생적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대학의 자율성과 자치권의 요구는 집단이기주의의 반영이 아니라, 대학의 본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대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율과 관료주의, 권력의 지배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자주권 확보의 중심에 총장 선출의 문제가 놓여있다. 멀리로는 교황과 국왕이 지배하려 했고, 가까이는 나치 정권과 같은 전제적 정치조직이 ‘제국 교육부 설치령’을 내세워 지배하려 하였으며, 우리의 경우 군사정권에 의해, 혹은 권력화한 법인에 의해 자주와 자율이 침해당했던 대학의 역사는 탐구적 실험과 자유의 정신을 지키려는 노력에 의해 지금껏 이어질 수 있었다.

총장의 선출은 이렇게 오랜 역사를 통해 지키고자 노력해온 대학의 자주와 자율을 가장 잘 보장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직선제나 간선제나 제도 자체로서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없다. 직선제는 그 자체로 삼류이고 간선제는 그 자체로 일류인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는 총장 선출 제도를 우리는 물론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조차도 못하는 대학이 수두룩

그러나 그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형식적 제도가 아니라 그 형식적 제도를 작동시키는 자주적 문화와 가치, 그리고 배경적 제도들이다. 우리의 문화와 배경적 제도 하에서 창조적 탐구의 정신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류 민주주의도 구현할 수 없는 대학이 수두룩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김혜숙ㆍ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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