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 이후 지표경기는 상승궤도에 진입했다.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 고지를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구매력은 달라진 게 없고,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 개선 정도는 환란 이후 가장 더뎠던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5년 국민계정’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성장률(GDPㆍ국내총생산 증가율)은 4.0%에 이른 반면,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0.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GNI란 환율과 수출입물가 등이 반영된, 국민들의 실질적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 경제의 외형은 4% 커졌지만 국민들의 구매력은 사실상 정체상태나 다름없는 0.5%밖에 늘지 않았고, 그래서 지표경기는 살아나도 체감경기는 여전히 얼어붙어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0.5%의 GNI 증가율은 환란 직후였던 1998년 마이너스 8.3%를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GNI증가율이 GDP증가율을 밑도는 현상, 즉 구매력이 경제외형적 성장을 못 따라가는 현상은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쯤 되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따로 노는 구조가 아예 고착화했다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지난해 GNI증가가 제자리걸음을 했던 까닭은 국제유가가 뛰고 환율이 떨어진 데 일차적 이유가 있다. 수입물가는 뛰고 수출단가는 떨어지는 교역조건 악화로, 구매력도 정체상태에 머물렀던 것이다.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은 1만6,291달러로 집계됐다. 1년전에 비해 2,098달러나 늘어 연간 증가액으론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것은 착시다. 원ㆍ달러 환율이 연평균 10.5%나 하락함으로써, 달러화로 표시되는 국민소득이 이렇게 부풀려진 것이다. 사실 원화기준 1인당 소득은 2004년 1,625만원에서 2005년 1,669만원으로 고작 44만원 밖에 늘지 않았다. 실질 구매력 개선없이 ‘환율 놀음’으로 급신장한 1인당 소득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지금 추세라면 2008년쯤 1인당 소득 2만 달러의 꿈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다행스런 점은 성장의 질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고 있다는 것. 전년도 부진에 따른 기술적 반등측면이 있지만, 작년 4분기 실질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5.3%로 꽤 높았다.
전분기 대비로 봐도 1.6% 늘었는데, 연율(年率: 4분기 내내 같은 비율로 성장한다고 가정한 것)로는 무려 6.6%에 달한다. 수년째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았던 소비와 투자 등 내수분야에서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4분기 GNI 증가율 역시 전년동기대비 1.2%, 전분기 대비 1.0%로 종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다. 지표경기와의 괴리가 아직은 남아있지만, 구매력과 체감경기도 조금씩 탄력을 받는 흐름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년엔 교역조건도 개선돼 경제 성장률(5%)과 GNI 증가율(4.5%)이 엇비슷해질 것이고 결국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오랜 간극도 거의 메워질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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