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 두거나, 파트 타임으로 일해야 한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망설인다. 많이 낳고 싶지만 한 명 이상 아이를 낳으면 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 그런데도 기업이나 정부는 일과 가정을 함께 꾸릴 수 있도록 돕는 데에는 아직 인색하다.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경향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6,472명의 기ㆍ미혼 남녀(20~44세)를 방문 조사, 저출산 현상의 원인으로 짐작되는 결혼 및 출산 동향을 분석했다. 저출산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조사인 셈이다.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국가 차원의 출산 장려책 미흡, 기업의 육아 지원 미비 등 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늦게 결혼하고 덜 낳는’ 경향이 굳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혼관 자녀관 등 달라진 가치관도 저출산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만혼·저출산' 경향 고착화 확인
결혼한 여성의 64.4%만이 “자식이 필요하다” 고 답했다. 3명 중 1명은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20~24세 연령층이 이 같은 답을 한 비율은 55.7%, 25~29세는 60.8%, 30~34세는 63.5%로 나이가 적을수록 자녀의 필요성을 덜 느꼈다.
결혼한 여성의 절반 가까이는 첫째 아이를 낳은 후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 다니던 여성이 결혼을 하면서 그만 둔 비율도 61.2%나 됐다. ‘자아 실현’을 결혼 생활만큼이나 중요시하는 요즘 여성들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육아 부담을 사회가 줄여주지 않으면 어떤 출산 장려책도 효과가 떨어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집안일을 돌보는 데 아내가 남편보다 하루 평균 4시간이나 더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편 보다 훨씬 무거운 육아 및 가사 노동의 부담이 아내로 하여금 아이 낳기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임을 확인시킨다.
●아내가 집안일 '4시간 더'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결혼관에 대해 물어봤더니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만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미혼 남성(71.4%)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이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늦게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결국 저출산 경향의 주요 원인이 된다.
미혼 남성이 결혼을 미루는 데에는 결혼 비용 부담(15.1%), 소득 부족(14.7%), 고용 불안(13.6%) 등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여성은 결혼 시기(34.3%), 배우자 조건(14.1%), 자아성취(13.1%) 등 가치 성향적 이유들을 꼽았다.
또 자녀가 있는 가구 가운데 51.7%가 생활비 가운데 교육비 비중이 가장 크다고 응답했다. 여러 명 낳아서 원하는 만큼 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것 보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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