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친구가 말렸다. “겨우 2,000원인데. 그런데 실은 그걸 낼 때면 안 내도 될 1,000원을 손해 본다는 생각에 속이 꽤 쓰리거든.” 그러니까 이 문제는 어쩌면 ‘겨우 1,000원’을 시비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침 출근을 위해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은 불과 20분, 거리로도 10여km 정도인데 그 때마다 매번 승용차요일제를 어기는 차량을 보게 된다.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승용차요일제는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월화수목금요일 가운데 하루를 선택해서 차를 운행하지 않으면 터널혼잡통행료를 절반으로 깎아주고 공용주차장 이용료도 싸게 해준다.
동사무소나 구청 시청에 신청하면 스티커를 받는데 이걸 차에 붙이고 다니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안 지켜도 그만인 승용차요일제
올해부터는 자동차세를 5%씩 삭감해주고 자동차보험사와 손잡고 보험료를 2.7% 깎아주는 혜택까지 추가로 마련했다.
자동차세를 감면받기 위해 올 1월 19일부터 3월 중순까지 15만 8,000여대가 전자스티커를 받았다. 세금 삭감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전자칩으로 부정을 가려내기 위해 스티커가 진일보했다. 이에 앞서 이 제도가 시행된 2003년 7월부터 이 날까지 종이스티커를 받은 자동차는 212만대인데 이 종이스티커도 과거의 혜택을 받는 데는 여전히 유용하다.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자발적인 시민운동의 틀을 갖고 있어서 참여를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딱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딱함을 부추기는 제도가 뒤에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차를 운행하지 않는다고 혼잡통행료를 절반으로 깎아준다면 그걸 지키지 않은 날에는 나머지 나흘동안 삭감받은 통행료를 토해놓도록 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
어긴 날 하루만 다른 차량들처럼 통행료를 제대로 내면 된다.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이 제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일주일에 내야 하는 혼잡통행료가 2만원이면 거짓말로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내는 비용은 1만2,000원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이익을 누리는 제도이다. 자동차세 감면이야 전자칩을 이용해 약속이행을 감시한다지만 터널 앞에서 이용료는 여전히 받아내지 못한다. 제재를 하려 해도 법적인 근거가 없고 창구 안에 들어있는 수금원들이 통제할 수도 없다.
그래도 거짓말이 싫어서 이 제도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기묘한 속박이 또 있다. 구청을 출입하는 차량은 반드시 이 스티커를 붙이도록 강제하는 구청이 있고 한 때는 구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할당제로 참여자를 모집하도록 해서 친구들이 엮여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소한 일이지만 거짓을 하라고 끈질기게 유혹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스티커를 달고 나면 어떻게든 하루 운전을 쉬어야 하겠지만 일이 일인지라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약속을 어기고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거짓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아주 양심적인 사람도 규칙을 어겨 제대로 혼잡통행료를 내면 “괜히 오늘 하루 1000원 손해 보네”라는, 황당한 생각에 젖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정신을 차리고 ‘아니, 내가 이거 푼돈 몇 푼에 왜 양심을 파는 거야’라는 생각이 스치고 가면 다행이겠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공짜를 즐기고 있다.
●양심 걸려 참여안한사람만손해
“재산이 167억인 이명박도 몇 백만원 아끼려고 공짜 테니스 쳤는데.” “지난번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보니까 연봉을 옴빡 저축한 사람 많더구만. 그럼 뭐야, 생활비는 전부 판공비에서 융통했다는 거 아닌가.” 뿐인가.
돈 많이 벌면서 탈세하는 자영업자들도 떠오르고 연구비 떼어먹는 교수들도 떠오르고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는 정부당국에 울화통이 치밀다가 마침내는 겨우 1,000원 가지고 고민하는 자기야말로 얼마나 양심적인 시민인가 감격하게 된다. 아, 대~~한 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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