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이산가족들이 22일 금강산에서 상봉행사를 마치고 남쪽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북측이 10시간 동안 막아 파문이 일고 있다. 고령 이산가족을 볼모로 한 북측의 행태는 인도주의 정신에 반한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상황은 이렇다. 20일 시작된 상봉행사 보도과정에서 북측은 '납북' 등의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SBS, MBC기자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남측이 응하지 않자 22일 오후 남측 이산가족의 귀환을 막았다. 남측은 "우선 이산가족이라도 돌아가게 한 뒤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은 "기자 1명도 같이 철수해야 한다"며 이산가족 차량 출발을 저지했다.
이 때문에 남측 이산가족들은 밤 늦게까지 불안에 떨며 차량과 숙소 주변에서 기다려야 했다. 90세 이상이 7명, 80대만 43명인 고령의 이산가족들이었다. 북측은 결국 오후 8시께 "이산가족들만 먼저 남쪽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며 물러섰고 오후 11시10분 이산가족은 금강산을 출발했다.
2000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북측이 이처럼 무리한 행태를 보인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1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도 취재기자의 '납북' 표현을 문제 삼아 취재를 한때 제한하기는 했지만 행사 일정이 어긋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북측은 남측의 보도를 문제 삼아 21일 개별상봉 행사를 7시간 정도 연기시킨 데 이어 귀환도 미루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북측의 태도는 우선 25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연습 때문으로 보인다. 북측 사회 전반이 RSOI에 대응하느라 잔뜩 예민한 상태였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취임 직후 "국군포로ㆍ납북자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공언, 북측은 자극을 받은 상황이었다.
평소에도 북측은 "납북자는 북쪽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고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의 체제를 흔들겠다는 의도"라며 반발해왔다. 결국 북측이 남측 취재진의 발언을 꼬투리 삼아 이산가족까지 볼모로 잡은 것은 남측의 예봉을 꺾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도 이전에 비해 강경했다. 현지에서는 "북측의 요구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북측의 태도 변화를 계속 요구했고, 서울 본부도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남북의 강경기류가 서로 부딪쳤던 것이다.
물론 피해는 이산가족들에게 돌아갔다. 50여년만에 흩어진 가족을 만난 고령 이산가족들은 애꿎게 마음을 졸여야 했다. 과거 12차례 행사에서 매번 특수이산가족 형태로 국군포로, 납북자 가족들이 만나왔고 남측 취재진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지만 북측은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던 북측의 돌연한 태도변화는 납득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정부 내 온건론자들 사이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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