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과 학생 장성택은 잘 생긴 데다 똑똑하고 재주가 많았다. 예능 방면에도 소질이 있어 노래와 춤에 능했고 특히 아코디언 연주를 잘했다. 같은 과 여학생이 그에게 홀딱 반해 사랑에 빠졌다. 김일성 주석의 장녀 김경희였다. 하지만 김 주석은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했다.
장성택이 갑자기 원산 경제대학으로 전학가게 된 것은 두 사람을 갈라 놓으려는 조치였다. 김경희의 고집도 대단했다. 아버지에게 장성택과 결혼하겠다고 울고불고 매달렸다. 원산까지 쫓아가서 함께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결국 천하의 김 주석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이한영, 『김정일 로열 패밀리』).
▦ 강원도의 평범한 집안 출신인 장성택은 김경희와 결혼 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한때 파티를 지나치게 즐기다가 강선 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쫓겨가 고생한 적도 있지만 곧 복권돼 1995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자리에 올랐다.
네 살 위 처남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도 각별해 2인자로 불리기도 했다. ‘7ㆍ1 경제관리개선 조치’ 직후인 2002년 10월엔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 서울과 포항 등지를 둘러보고 갔다. 그런 그가 2003년 7월 이후 돌연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 김정일 후계구도와 관련한 ‘곁 나무’ 제거설, 정치분파 활동으로 인한 업무정지설, 가택연금설, 신병설 등 억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에게 “장 부(부)장이 남조선에서 폭탄주를 너무 먹고 몸을 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쉬도록 했다”고 밝혀 조만간 복귀를 점치게 했다.
장성택은 경제시찰단으로 남한을 방문했을 때 매일 밤 숙소에서 폭탄주를 즐겼고 유흥주점에도 들렀었다고 한다. 그는 연초 김 위원장의 방중이 끝난 직후 노동당 중앙위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공식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 장성택은 지금 중국을 방문 중이다. 고위 경제관료 등 30여명을 이끌고 김 위원장의 방중 남순(南巡) 코스인 우한, 광저우, 선전 등지를 둘러보고 있다는 보도다. 외무성 과장 시절 외화벌이 사업에 수완을 발휘했던 그는 대외경제 개방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복귀 자체가 북한의 개혁ㆍ개방 가속화를 시사한다는 분석이 있었던 마당이어서 그의 방중 활동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김 위원장이 과연 그에게 경제개방의 중책을 맡겼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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