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며 20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황모(30·여)씨 부부는 요즘 새벽잠을 포기했다.
늦게까지 비디오를 보며 버티는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훌쩍 새벽 1시다.
아이는 깨어있는 낮에도 부산하고 산만하기 그지없다. 소아과를 찾은 황씨 부부는 의사로부터 “TV 시청을 줄이고 잠을 일찍 재우지 않으면 나중에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된다”는 무서운(?) 말을 들었다.
올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선미(4·여)집에서는 아침마다 전쟁이 일어난다. 유치원 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지만 잠이 덜 깬 선미는 “유치원에 안 간다”며 ‘행패’를 부린다.
선미는 잠든 조부모 옆에서 혼자 TV를 보며 흔히 자정을 넘긴다. 취침 시간이 늦다 보니 밤 11시에 “밥 달라”고 잠든 할머니를 깨우고, 혼자 새벽 2~3시까지 부스럭거리는 일도 다반사다.
승철(4)이도 사정은 비슷하다. 잠자리에 들라치면 승철이는 10분 간격으로 “물이 마시고 싶다”, “쉬가 마렵다”, “배 고프다”며 ‘저항’한다.
아빠 김모(33)씨는 “아이가 졸려 보이는데도 저렇게 발버둥치는 걸 보면 소아정신과라도 찾아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중고생의 수면 부족은 밤늦은 학습 탓이라지만 ‘올빼미 유아’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국제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른 못지않게 늦게 자고, 청소년과 성인의 수면량도 절대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일본 베넷세교육연구개발센터는 서울 도쿄(東京)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타이베이(臺北)의 3~6세 유아 6,000명을 조사했는데 ‘오후 9시 이전에 잠잔다’는 비율이 서울 유아의 경우 36.3%에 불과했다.
도쿄(75.8%), 상하이(79.5%)의 절반도 안 된다.
아이들의 문제는 사실 어른에서 비롯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세계적으로 늦게 자는 편이다. 지난해 AC 닐슨의 28개국 조사에서 한국은 밤 12시 이후 잠드는 비율이 68%로 3번째로 많았다.
최근 방한한 미국의 수면전문의 모리스 오하이온(스탠퍼드대 수면역학연구소) 교수는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등 7개국 수면센터의 전화조사에서 한국 성인의 평균 수면 시간이 6시간30분으로 전체 평균보다 30분이나 짧았으며 이는 늦은 취침 탓”이라고 밝혔다.
맞벌이가 늘고, 밤문화가 발달하고, TV와 컴퓨터에 너그러운 환경이 ‘잠 안 자는 아이들’을 양산한다.
아이들의 늦은 수면 패턴은 온 가족의 생활 리듬을 깨뜨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선미 엄마인 김모(36)씨는 “아이 때문에 어른들도 덩달아 잠을 설쳐 다음날까지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승철이 아빠인 김씨는 “부부생활이 어렵다”는 고민을 토로한다.
아이들은 낮 시간 내내 산만하고, 어른들은 하루종일 피곤에 젖어 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이 같은 현상의 상당 부분은 우리 모두가 밤을 잊고 사는 탓인지 모른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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