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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경쾌한 옛 건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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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경쾌한 옛 건축이 그립다

입력
2006.03.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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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퍼’라 불리는 경량의 간편한 신으로 마침내 갈아 신고 공간과 시간 속을 어슬렁거리고픈, 마음 설레는 계절이 들어서고 있다. 게으른 사람을 뜻하는 그 이름만 들어도 온화한 나라 어딘가의 라틴적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물씬 묻어나는 가벼운 신이다.

그러고 보니 현대인이 일상에서 짊어지고 가야 할 물질들 속에서 가벼움의 정서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비싼 값으로 취급되는 시대 아닌가. 휴대용 컴퓨터나 전화기, 카메라 등의 크기나 무게를 겨우 몇 밀리, 몇십 그램 남짓 줄여나갈 때마다 어느 브랜드든 이를 커다란 개가로 내세울 정도로 물질의 가벼움은 곧잘 미덕이나 매력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의 도시에서 건축은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그 상징적 무게를 감량할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저 혹한에 맞서서는 두께와 밀폐로 대항하고 혹서에 대응해서는 그 덩치와 무게를 강제로 식혀내겠다는 투다. 특히 주거와 관련지어서만큼은 우리 도시인들의 기온, 기후에 대한 의식은 분명 건강치 않아 보인다. 계층과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나 창호지 한 장의 두께로 혹한마저 견디던 옛 양식의 씩씩함에 비하면 말이다.

최소한 19세기 말까지는 좋은 집(陽宅ㆍ양택)을 발생시키기 위한 일종의 설계지침서에서 추운 집을 그다지 심히 경계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의 태생적 짐을 어딘가에 항상 부려놓는 한편 겸양과 소박의 윤리에 덧붙여 집은 늘 특유의 경쾌함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경쾌함의 이미지가 손상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는지는 딱히 모르나 생각보다는 어쩌면 비교적 최근의 일일지 모른다.

대략 지난 세기 중반 이후 혹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 갑작스레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도시적 삶의 극히 부정적 경험과 기억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는 짐작 뿐이다. 볕이 잘 안 들거나 추운 집이란 곧 빈한한 삶의 직접적인 표상이라는 상흔 같은 기억이 사람들의 의식에 마치 똬리 틀듯 전해져 내려오기나 한 것인지.

자동차 생산대수로 본 강대국들 중에서, 덮개의 개폐가 가능한 컨버터블 형식의 차종을 지독하게도 단 한 대도 생산하지 않고 있는(잠시 외국의 차종을 그대로 들여와 조립생산했던 경우를 빼고) 유일한 나라 또한 우리다. 외기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우리의 그 유별난 기질이 그저 탁월한 밀폐 성능을 자랑하는 고급 창호로 밀봉한 채 공간의 내부만 비대하게 키우고 있다.

집은 감량의 경쾌함과 연관된 오래된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 내부 공간이 대체로 삶의 기능적인 면을 담는 장치라면 마당, 코트(court), 발코니, 테라스, 루프 덱(roof deck) 등 집에 딸린 외부 공간은 그곳에 모종의 라이프스타일이 빚어지길 기다리는 잠재적 장치다. 이를 위해, 앞서 말이 나온 김에 이른바 ‘컨버터블’한 방식의 공간구조를 더욱 모색해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때마다 공간은 ‘로퍼’를 신고 아름다운 계절 내내 어슬렁거릴 것이 분명하니.

김 헌<건축가·어싸일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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