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산하단체 및 공기업 인사와 관련해 언론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바로 ‘낙하산’이다. 낙하산 인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어서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참여정부는 낙하산 인사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서도 낙하산 인사는 여전했고 이에 대한 언론비판도 무성했다.
낙하산 인사의 근절은 가능한가? 모두 다 솔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잘못은 그게 가능할 것처럼 큰소리쳤던 참여정부에게 있지만, 이젠 우리 사회 전체가 낙하산 인사에 대해 정직하게 대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선거제도가 있는 한 근절 힘들어
낙하산 인사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싸잡아 비판하면 어느 정도의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정권 입장에선 미친 척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억울하면 네가 정권 잡아라” 하고 배짱을 부리면서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우선 정치에 대한 혐오를 잠시 억누르고 선거와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공정하게 평가해보자. 가수 조용필씨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라고 노래했는데, 사실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만큼 외로운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게다. 선거야말로 모든 걸 거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무슨 선거건 후보로 출마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선거란 다 나름대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든 걸 걸고 경쟁해서 한 명만 살아남는 게임인데, 그 경쟁에서 죽지 않기 위해 ‘읍소’와 ‘비굴’도 불사하게 되니 그보다 더 혹독한 인생 공부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의미다.
선거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선거 참모들은 자신의 생계까지 내던지면서 전업으로 참여한다. 당선자는 그들에 대한 보상을 어떤 식으로건 하지 않을 수 없다. 규모가 큰 선거일수록 그런 사람들의 수는 많아진다. 이게 바로 낙하산 인사가 창궐하는 근본 이유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은 그런 보상을 하지 말라는 주문인 셈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영원히 선거에 출마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그러길래 누가 출마하라고 했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차피 선거라는 제도를 운영하기로 한 이상 누군가는 반드시 출마를 해야 한다.
언론이 아무리 비판을 해도 참여정부를 포함한 역대정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낙하산 인사를 해왔다. 이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정권이 언론 알기를 우습게 아는 건 언론에게 좋지 않고, 언론 비판이 민심 이반에 기여하는 건 정권에게 좋지 않다. 이반되는 민심의 주체는 좋은 일이 무어 있겠는가.
5ㆍ31 지방선거에서도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믿지 않는 게 좋다. 믿을 유권자들도 없을 게다. 한두번 속아 왔나. 그러니 단체장 후보들은 괜히 허풍 떨지 말고 정직하게 낙하산을 탈 요원들의 수를 미리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 ‘낙하산 실명제’까지 하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신뢰’가 산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의 붕괴가 아닌가.
● 공개적으로 하면 신뢰는 안 잃어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국민도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줘야 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정치인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에겐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그걸 인정하는 현실적 기반에 서야 정치를 비판하더라도 힘이 실리고 응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5ㆍ31 지방선거에 출마한 용사들은 부디 지키지도 못할 허풍은 치지 마시라. 유권자들은 그간 너무 속은 나머지 오히려 당당하게 큰소리 치는 후보에게 감명을 받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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