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의 잇따른 대책에 큼직한 물음표가 찍혔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늘리고, 투기적 수요를 규제하고, 재건축 규제책을 내놓았지만 핵심 표적인 서울 강남 집값은 잡히지 않고 있다. 예상과 달리 조세 회피용 매물이 나오지 않는 데다, 공급 부족까지 겹쳐 매물이 말랐다. 반면 대기 수요자는 나날이 늘고 있어 아파트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전세 공급까지 달려서 32평형이 5,000만원 이상 올랐다. 이런 결과를 두고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의 한계라거나, 시장의 복수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이런 강남 아파트값ㆍ전세비 동반상승을 두고 정부도 뒤늦게 실수요에 의한 것임을 부분적으로 시인했다. ‘8ㆍ31 조치’를 비롯한 일련의 정책이 가수요를 잡아 상대적으로 실수요가 두드러졌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이 귀에 거슬리지만, 어쨌든 현실 인식에 다가선 점은 평가할 만하다. 적어도 ‘8ㆍ31 조치’ 이후인 올해의 집값 상승에 대해서는 투기적 가수요를 탓하기 어렵다. 며칠만 부동산중개소를 돌아다녀 보면 ‘반상회 집값’이니, ‘부녀회 집값’이니 하던 말이 이미 옛날 얘기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더 일찍이 이런 현실을 간파할 수 있었다. 강남 집값, 특히 재건축 아파트값 때려잡기에 힘을 집중한 것은 초점이 빗나갔다. 재건축 아파트값은 주변 시세와 재건축 비용, 금리 등을 계산해 책정된다. 따라서 재건축 아파트는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주변의 새 아파트가 평당 4,400만원이 넘는데, 새로 지어지기만 하면 여건이 한결 나을 특정 아파트의 미래 가치가 평당 5,000만원이 되고, 거기에 금리 등을 산입한 결과 현재의 시세가 올라가는 현상을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가. 오히려 ‘장기적 공급 부족’ 전망만 굳혀준 게 아닌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그나마 막연하게 기대를 가졌던 ‘거품론’도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400조원이 넘는 거액의 유동자금이 떠돌며 실수요를 떠받치고 있는 시장에서 다른 나라와의 비교나 전세비 비율 등으로 추정한 ‘거품론’ 자체가 어쩐지 거품이 돼가는 느낌이다.
얼마 전 일본 정상의 부동산회사 간부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몇 년 전 도쿄(東京)에 분양가 1억엔이 넘는 아파트인 ‘오쿠션(億+맨션)’이 나타나 크게 화제가 됐던 일이 떠올랐다. 경기가 많이 풀렸으니 지금쯤은 2억엔, 아니 3억엔 짜리 아파트도 있겠다 싶어 제일 비싼 아파트가 얼마냐고 물어 보았다.
“최근 저희 회사가 도쿄 중심가에서 분양한 63평형 아파트가 가장 비싼데 14억엔이 조금 넘습니다. 평당 2,200만엔 정도 되지요.” 귀가 의심스러워 몇 번이고 되물어 보았지만 대답은 같았다. 다만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일부 지역의 최신형 아파트만 그렇지 전체적으로는 아주 미미한 상승세여서 거품과는 거리가 멉니다. 과거에는 핵심지역과 주변지역의 집값이 피라미드 모양이었지만 지금은 첨탑형입니다. 극히 일부 계층의 ‘과시형 수요’가 첨탑을 밀어올리고 있지요.”
학교와 학원이 밀집한 교육 특구, 환경 특구, 부동산 투자 특구에 쏠린 현재의 탄탄한 수요에 ‘과시형 수요’까지 겹치면, 이른바 ‘강남 거품’이 꺼질 날이 더욱 아득해지리라는 우려가 밀려든다. 그러나 첨탑형 집값 상승은 일반 국민과는 무관한 별세계의 일이라고 마음 정리만 하면 그만일 수 있다. 문제는 첨탑이 아닌 밑변이 넓은 한국형 피라미드다.
정부가 강남 집값 잡기를 서민 주거안정 대책과 혼동하고, 양극화 해소의 핵심을 저소득층 부양 대신 고소득층에 대한 증오 부추기기로 흐를 때가 아니다. 이런 먹통 정책 대신 지역ㆍ계층별로 세분화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결국 현재의 조세 압력을 유지하면서 강남에서는 공급, 강북에서는 수요를 늘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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