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을 새 총리로 지명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국회 임명 동의와 5ㆍ31 지방선거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우선 ‘첫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과 명분을 앞세울 경우 국회 인준과정에서 야당의 공세를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음을 중시한 것 같다. 이를 통해 여당의 지방선거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는 분석이다. 또 여당 소속이지만, 정치 색이 상대적으로 옅은 한 의원 카드로 야당의 선거중립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여당의 지방선거 득표전략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권은 여성 총리를 지명한 데 이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울 경우 지방선거에서 여성 표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표정이다. 결국 한 의원 카드는 여당의 장래와 입지를 우선적으로 감안한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총리문제로 정국이 요동치고 레임덕(권력누수)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DJ 정부 임기 말 장상, 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국회 임명 동의를 받지 못해 권력누수와 정국 혼란이 가속화됐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남은 2년 임기 동안 원만한 국정운영과 마무리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청와대의 청사진이 깔려 있다.
이병완 청와대는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참여정부 남은 임기에는 안전 항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안전 항해를 위한 첫 관문이 국회의 총리임명 동의 아니냐”고 말했다. 청와대가 한 의원과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등 2명으로 총리 후보를 압축한 뒤 이를 공개한 것도 야당을 떠보고 협조를 구해 국회 인준 과정을 원만히 하려는 취지에서였다. 물론 복수의 후보를 띄움으로써 한나라당이 두 사람을 모두 반대하는데 부담을 느끼도록 한 측면도 있다.
아울러 새 총리 취임과 정국안정에 이은 여당의 지방선거 선전은 2년간 정권의 순항을 위한 토대가 될 것으로 청와대는 보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노 대통령은 향후 국정 운영 기조를 ‘안정ㆍ화합’에 둘 것으로 관측된다. 노 대통령이 17일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찬 모임을 갖고 총리 인준 협조를 요청한 데 이어 총리 후보를 공개해 야당 의중을 떠본 것은 일단 야당과의 대화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동시에 여당 지도부의 의사를 존중하는 당청관계를 꾸려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동영 의장이 14일 청와대 면담에서 이해찬 전 총리 사표 수리와 여성 총리 기용을 건의한 것을 노 대통령은 모두 수용한 셈이다.
하지만 분권형 국정운영 기조와 책임총리제는 다소 퇴색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측은 “책임총리제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한 의원의 국정 장악력은 이해찬 전 총리와 비교할 때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견해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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