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전 당시 이라크 외무장관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스파이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 NBC 방송은 21일 익명의 제보자를 인용,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그의 최측근이었던 나지 사브리(사진) 외무장관이 CIA에 이라크의 실제 무기능력을 알려줬으며 그 대가로 1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사브리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의 능력이 실제로는 미미하다고 알려줬으나 미국은 이를 축소하거나 무시했다고 밝혀 미국이 이라크전과 관련해 또 다른 정보조작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NBC 보도에 따르면 사브리는 2002년 9월 미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으나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 때문에 전쟁을 하려한다”고 연설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의 중개로 CIA 당국자와 사브리 대리인 사이의 비밀 접촉이 뉴욕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고 이후 사브리는 제3자 등을 통해 이라크의 실제 무기 정보를 제공했다. 사브리는 이라크에는 의미있는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이 없다고 말했으나 전쟁 전 CIA는 후세인이 탄저병 같은 생물 무기에 대한 연구개발과 생산, 무기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쟁 후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돼 사브리의 진술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이라크의 핵무기와 관련해서도 CIA는 후세인이 우라늄을 농축해 보관하고 있으며 1년 안에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브리는 “후세인이 핵폭탄을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실제 핵폭탄을 만들려면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브리쪽의 진술이 훨씬 더 정확했던 셈이다.
하지만 CIA가 그에게 이라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도록 압력을 넣으면서 짧았던 사브리와의 밀월 관계는 깨졌다. 전쟁 후 사브리는 “미치고 주정뱅이인데다 무식한 (부시) 대통령이 명령해 이라크를 침범한 미군들은 전범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사브리는 이라크전 당시 체포되지 않았고 후세인의 최측근인데도 최우선 생포자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중동에서 살고 있다. 때문에 미국이 과거 스파이 역할을 했던 그를 보호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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