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잘 못자면 키가 안 클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더 큰 문제는 산만함과 비만이라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성장과 발육에 장애를 겪는다는 통념은 “성장호르몬은 잠을 잘 때 분비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잠을 언제 얼마나 자느냐가 성장에 직결된다는 의학적 증거는 없다.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김덕희 교수는 “성장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 중 수면 문제가 원인인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며 “성장호르몬은 잠이 든 후 1시간 뒤부터 분비되기 때문에 그 이상 오래 자기만 한다면 언제든 충분히 분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늦게 자는 아이들에게는 산만함이 큰 고민거리다. 가톨릭대 의대 성빈센트병원 홍승철 교수는 “만성적으로 잠이 모자라면 주의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느려지며, 특히 깊은 수면이 부족할 경우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아이들의 수면 시간을 35분 늘렸을 때 기억력과 학업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브라운대 의대 팰론 박사팀이 초등학교 1~2학년생에게 수면 시간을 1시간~1시간30분 정도 줄여 8시간 이하로 재우자 기억력, 학습 능력, 주의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도 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는 수면과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홍 교수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주의력, 인내력, 학업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며, ADHD 어린이의 경우 불면증이 종종 관찰되는 등 수면과 ADHD는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다. “유난한 아이라서 잠을 안 잔다”고만 여길 것이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산만하다”고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늦은 취침은 비만과도 관련이 있다. 김덕희 교수는 “늦게 자는 아이들은 대부분 TV나 컴퓨터를 하면서 단 군것질을 하는 경우가 많고 단 음식은 비만을 유발하고 성장호르몬 분비를 저해해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만은 그 자체로 성장호르몬 분비를 감소시키며, 코골이가 흔해 수면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잘 못자는 것과 비만이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전문의들은 아이가 유난히 산만하거나, 주의력이 떨어져 다친 적이 있거나, 코골이, 이갈이, 몽유병 등이 보일 경우 수면 전문의를 찾아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 "밤 되면 조명 낮추고 TV꺼라"
“우리나라 아이들이 잠을 잘 못자는 것은 결국 밤 문화가 너무 발달한 탓입니다. 밤을 있는 어두운 그대로 즐기는 캠페인을 펼쳐야 할 때가 됐습니다.”
서울수면센터의 한진규 원장은 어른들은 밤 늦게까지 음주 문화를 즐기고, 청소년은 학원 교습과 인터넷으로 잠을 안 자며, 어린 아이들 역시 부모 형제의 영향을 받아 늦게까지 TV, 비디오에 매달리는 탓에 전 국민이 ‘수면 박탈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중고생의 경우 수면의 절대량을 늘리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는 충분히 자도록 온 가족이 밤을 어둡게 맞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원장은 “밤이 되면 일단 조명부터 낮추고 TV를 아예 꺼버리라”고 조언했다. TV와 비디오, 컴퓨터 게임 등은 실제 잠을 방해한다. 한 원장은 “잠이 오도록 하는 뇌 분비물질인 멜라토닌은 아침에 눈으로 빛을 본 뒤 약 15시간이 지나 분비되는데, 저녁에 TV나 컴퓨터의 화면을 통해 빛을 보면 오히려 잠을 늦게 자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성빈센트병원 홍승철 교수 역시 “늦게 자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수면 관리에 소홀한 것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늦게 잠드는 아이들은 대부분 잠자리에서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잠드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이러한 행동은 잠자리를 TV 시청(컴퓨터 게임)으로 여기게 돼 나쁜 수면 습관을 들이게 된다”며 “부모가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등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아이들을 재우기 위한 ‘잠자기 의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잠자기 의식이란 아이 스스로 ‘이제는 자야 할 때’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 주는 것으로 손발을 씻거나 세수하기, 이 닦기, 잠옷 갈아입기, 부모와 인사하기 등이 그런 것이다. 좀더 특별하게 책 읽어주기, 기도하기 등도 좋다.
광주 최영정신과 최영 원장은 “아이들은 잠을 자는 것을 ‘부모와의 이별’이라고 생각해 이를 두려워하고, 그 때문에 자는 것을 거부하고 부모와 더 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부모가 책 읽어주기, 함께 기도하기 등을 함으로써 아이들의 분리불안증을 없애고 편안하게 자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초저녁 이후 운동을 하지 않고 과식을 피하며 대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이에게는 매일 자는 시간을 정해 놓고, 5~10분 전에는 꼬박꼬박 알려주는 것이 좋다.
김희원기자 hee@hk.co.kr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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