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인수전이 국민은행, 하나금융,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의 3파전 구도에서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의 2파전으로 급선회했다. 2파전이라고 하지만 국민은행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우선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면서 막판 ‘다크호스’로 떠오른 DBS는 금융감독당국이 21일 “대주주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밝히면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사실상 탈락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이 6조4,000억원 내외를 써낸 데 반해 DBS는 6조9,000억원 대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론스타가 DBS를 선택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당국이 금산 분리 원칙을 내세워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분석이 많다. DBS의 대주주(28%)인 테마섹은 현재 산업자본으로 분류돼 있다. 민간기업의 매각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당국이 ‘누구는 안 된다’는 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나는 것.
그러나 DBS가 최종 계약자로 선정되면서 대주주 적격성 논란이 다시 불거질 바에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외환은행 매각 문제를 끌 경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의혹의 한 가운데 있는 감독당국으로서도 유리할 게 없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날 감독당국이 국민은행의 최대 아킬레스건이자, 하나금융 입장에서는 최고의 국민은행 공격 포인트인 독과점 논란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는 점. 그 동안 하나금융은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시장점유율(예수금 기준)이 33%를 넘어서 독과점 금지규정에 저촉된다고 주장해 왔다.
공정위도 “시장 획정을 예금으로 할지, 대출로 할지 등에 따라 독과점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날 금융감독당국은 공정위의 월권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정거래법 상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국민은행의 걸림돌을 제거해 주었다.
이에 따라 적어도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은 누구 하나 불리한 조건 없이 동일한 출발선에 놓이게 됐고, 승부는 오로지 ‘가격’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당국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주는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나+외환’ 구도보다는 ‘국민+외환’ 구도가 은행산업 발전이나 감독정책을 펴기에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은행 판도는 ‘통합국민(자산 273조원)-신한금융(168조원)-우리금융(157조원)-하나금융(106조원)’으로 국민은행 독주의 ‘1강 2중’ 체제가 된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국민은행(199조원)-통합하나(180조원)-신한금융-우리금융’의 4강 체제가 된다.
따라서 당국 입장에서는 고만고만한 은행들이 출혈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은 ‘빅4 구도’보다 ‘1강 2중’ 체제가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매각을 서두르려는 론스타 입장에서도 당국의 의지를 ‘존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20일 윤증현 금감위원장을 만난 것도 하나측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