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주자는 연주하면서 몸을 많이 흔들고 표정도 아주 느끼하게 지으며 온 감정을 표현한다. 반면,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며 고정된 자세로 연주하다 연주가 끝나면 가볍게 웃는 연주자도 많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 연주를 원하는가?
많이 움직이고 표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클래식음악보다는 대중음악 쪽에서 확실히 두드러진다. 요즈음 춤 못 추는 가수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하드록 라이브 공연은 연주자 뿐 아니라 관객까지 머리 흔들기에 정신이 없다. 발라드? 그들이야말로 멋진 표정의 대명사가 아닌가.
나는 어렸을 때 경험한 ‘조용필의 제2의 탄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만히 서서만 부르던 그의 트레이드마크를 벗어버리고 그는 록가수들처럼 무대를 뛰어다녔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막힐 것 같던 오빠부대들은 실신할 정도였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이런 행동이 음악에 취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혹시 마약 복용으로 인한 과장된 감정표현? 그런 건 더더욱 필요없다. 그들은 그 음악에 맞는 적절한 시각적 묘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음악을 연주하며 계속 웃고있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반대로 즐거운 음악을 연주하며 화난 표정을 짓는다면 브레히트의 연극에서나 볼 수 있는 ‘억척어멈’ 퍼포먼스를 보는 듯 할 것이다. 화난 표정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표정’이다.
어떤 이들은 절제되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연주자 자신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여기거나, 차분히 감상하는 점잖은 클래식음악에서 경망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감정을 억제하는 이른바 ‘절제’라는 것은 원래 폭발하는 감정이 먼저 만들어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즉 표현없는 절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분명한 것은 클래식음악을 차분하거나 점잖은 음악이라고 어느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편견이며 턱시도 문화가 가져온 선입견일 뿐이다.
놀라운 사실을 공개하겠다. 연주자의 과장된 표정과 자연스런, 혹은 미리 계획된 동작들은 클래식계의 엄청난 문제 하나를 해결한다. 그것은 바로 처음 들려주는 음악이라도 그 곡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는 연주자들만의 전유물인 ‘악보’라는 설명서를 관객에게 바디랭귀지로 연주와 동시에 전달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연주회에 간다면 무대 위 그들의 표정과 동작에서 눈을 떼지 말 것을 권한다. 표값의 반을 놓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집에서 CD를 듣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조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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