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군대는 장수들이 칼에 보석을 박기 시작했을 때부터 패망으로 치달았다. 나폴레옹 군대도 아프리카 전투에서 갑옷이 무겁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패퇴가 예고돼 있었다고 한다. 냉철한 판단과 자제력은 엄정한 정신 위에서 유지된다. 엄정한 정신은 도덕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해찬 총리의 정치적 추락은 골프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골프를 가까이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도덕성은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골프·성추행에도 선거만 걱정
골프 배척론까지는 아니지만, 골프는 정치인이 즐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스포츠다. 골프는 장시간 팀을 이뤄야 하는 경기이며, 그 패에는 부적절한 인물이 끼어들기 십상이다.
이 전 총리의 경우가 그러해 보인다. 정치권의 도덕적 타락이 못 볼 지경인데도, 정치인들만 못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 사무총장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은 뒤이은 골프사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최 의원의 추락은 한나라당 간부가 조중동 기자들과 술잔을 부딪치는 밀실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총리는 52.8%가 사퇴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최 의원은 78.3%가 의원직 사퇴에 손을 들었다. 정부여당은 이 총리 사건의 도덕성 추락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기보다,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더 걱정하고 집착했다. 도덕적 무신경은 한나라당에서도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언론사들의 보도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노보에 따르면, 해당 동아일보의 경우 성추행사건을 보도한 날부터 13일 동안 사설 1건 외에 칼럼 등 의견기사는 전혀 싣지 않았다.
반면 골프사건은 9일 동안 7건의 사설과 4건의 칼럼 등을 게재했다. 총 보도에서도 성추행 사건이 9건이고, 골프사건은 67건으로 차이가 났다. 앞의 여론조사와 비교해 볼 때, 언론의 민의전달 역할이 무색해진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이기적 특수집단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운운하며 성추행 사건을 옹호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최근 지방의원의 급여 자율화로 광역의원은 7,000만원, 기초의원은 5,000만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작은 지자체는 세수의 5분의 1 이상이 급여로 지출된다고 한다. 발표에 따르면 공직자의 관용차도 고급화하고 있다. 중ㆍ소형차를 타는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없으니, 청백리 찾기도 힘들 듯하다.
‘정치가 평생 직업이 되었다. 달콤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쓴 돈은 경비 처리되고 봉급은 몇 10만 달러다. 봉급은 자신들이 법만 고치면 더 올릴 수도 있다. 해외순방이라는 명목만 붙이면 외국여행도 공짜다.
점심식사를 시키는 일은 아랫사람이 다 알아서 처리해준다…’ 이것은 이제 미국 정치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1996년 발표된 해리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문가 중 정치인과 언론인이 가장 신뢰 받지 못 하는 계층에 속한다.
과거 YS는 후반기에 아들 관리를 못하고 초대형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바람에 평가에서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도입, 하나회 해체, 전두환ㆍ노태우씨를 감옥에 보낸 역사 바로 세우기 등 그의 개혁도 적지 않다. 그 언저리에서 그가 고집한 정치적 행태도 기억될 만하다. 그는 집권 5년 동안 공직자의 골프를 사실상 금지했고,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즐겨 대접했다.
●순진성 사라진 정치가 두려워
YS의 골프금지 방침 덕분에 여러 정치인의 정치 생명이 연장되었을 듯하다. 청렴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얄팍한 ‘칼국수’ 상징조작을 사용했다고 혹평을 하더라도, 또한 누가 거기에 일말의 진실이 없었다고 말할 것인가. 정치권의 순진성과 낭만이 사라져가는 풍토 속에 바짝바짝 다가오는, 오직 현실적 계산을 앞세운 5ㆍ31 지방선거가 차라리 두렵기조차 한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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