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개전 3주년을 맞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여전히 ‘승리’를 외치고 있지만 참전 미군들의 기억은 참담하다. 이라크 내 종파간 분쟁이 내전으로 비화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분분한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미군에 희생된 이라크 민간인이 보복살해를 당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이라크의 앞날은 더욱 암울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9일 이라크에서 복무했던 미군 100명을 인터뷰한 기사를 통해 “미군들은 자신만의 작은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참전 미군들에게 이라크는 연간 온도차가 섭씨 40도를 넘나들고 전쟁에 따른 궁핍과 가난이 전 국토를 잠식하고 있는 ‘극단의 땅(extreme land)’이다.
야전포병으로 참전했던 한 병사는 이 극단의 땅에서 “사람들을 날려 버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기술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자조했다. 주 방위군 소속의 한 병사는 “모두가 똑같아 보여서 누가 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며 이라크인들에 대한 강한 의심을 드러냈다.
“어디서든 폭탄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어서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시내로 차를 몰고 들어가면 들판의 여인들과 지붕위의 어린이들이 우리가 폭발 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를 도왔던 통역들은 대부분 죽었다” “자살폭탄으로 희생된 시신을 수습하다 보면 온통 피를 뒤집어 쓴 것처럼 돼 버린다” 등 참혹한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한 병사는 미군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이라크 민심에 대해 “우리의 그들의 마음을 잃었고 그들은 더 기꺼이 저항세력을 도우려 했다”면서 “이라크에 있는 동안 전쟁에서 졌다고 느꼈다”고 술회했다.
세속 시아파인 이야드 알라위 전 이라크 임시정부 총리는 19일 영국 BBC 방송과의 회견에서 “우리는 불행하게도 내전상황에 있다”면서 “종파분쟁과 저항공격으로 매일 50~60명씩 희생되는 상황이 내전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지도자들과 일부 이라크 고위 인사들은 내전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는 안정된 민주사회로 가고 있다”고 강변했다.
체니 부통령은 CBS 방송에 출연, “이라크 저항세력이 민주주의 진전을 막기 위해 내전을 부추기고 있으나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조지 케이시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은 “내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쿠르드족인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과도정부 대통령도 “우려는 되지만 내전상황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한편 미 해병대가 지난해 이라크에서 어린이와 여자 등이 포함된 무고한 이라크 주민 15명을 보복사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타임이 최신호(27일자)에서 보도했다.
타임은 “미 해병대가 지난해 11월 19일 이라크 서부 하디타에서 저항세력이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면서 해병대원 1명과 민간인 1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해병대가 민간인들을 보복살해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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