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재고합6, 2003재고합5 사건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문용선 부장판사가 20일 오후 1시 57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재심 사건 재판의 시작을 알렸다.
1975년 4월 8일 피고인 8명에 대한 사형이 확정된 지 31년,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당시 수사가 조작됐다”고 발표한 지 4년 만이다. 법정을 가득 메운 피고인 유족들과 방청객들은 “드디어 시작됐다”고 재판부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피고인석에 피고인은 없었다. 피고인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도예종, 여정남씨가 사형 확정 다음날 바로 형이 집행돼 이 세상에 없는 탓이다. 대신 유족들이 피고인을 대신해 피고인석에 앉았다.
‘간첩의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31년을 살아온 그들이었다. 하지만 여느 피고인들과 달리 표정은 밝고 당당했다.
우홍선씨의 부인 강순희씨는 “기쁜 마음으로 법정에 나왔다. 희망을 갖고 있다”며 무죄 선고에 대한 기대을 나타냈다.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씨는 “법 정의가 바로 서고 역사적 진실이 밝혀진다면 억울함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첫 재판에서는 검찰과 변호인의 모두(冒頭) 진술만 진행됐다. 검찰은 “유신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에 의해 만들어진 비상군법회의가 기소한 사건이지만 검찰에게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재판집행을 담당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 객관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를 맡은 김형태, 이유정, 박승진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재건하려고 했다는 인혁당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직이고, 인혁당이 배후 조종을 했다는 민청학련 역시 수사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긴급조치 1, 4호를 위반했다고 하는데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도 반하는 위헌적인 것이었다”며 “과거사의 올바른 청산을 위해 이 법정에서 반드시 긴급조치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일부 피고인이 북한 방송을 들은 사실은 있지만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이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은 법의 확대해석”이라고 말했다.
문 부장판사는 “재심 신청이 들어온 지 벌써 4년여가 지났고 재심 개시 결정도 지난해에 내려져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며 “기록 등의 부족으로 걸림돌이 있기는 하지만 최대한 빨리 이 사건을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4월 2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피고인 측은 이철, 유인태 등 민청학련 관련자와 당시 피고인들이 고문 당한 모습을 목격했다는 교도관 등을 증인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김형태 변호사는 “최종길 교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참고해 재심 재판의 증거 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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