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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망각과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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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망각과 착각

입력
2006.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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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건망증 사례를 듣는 일이 빈번해졌다. 잡지의 유머 코너에나 나올 듯싶은 얘기들이라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지만 본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자기의 기억회로가 노쇠해져 여기저기 툭툭 끊긴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공기를 마시듯 의식하지 않고도 사용하던 일상 단어들, 이름들이 머리 속에서 종적을 감춰 숨바꼭질을 하다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는 심정이라니! 건망증에 도통한 듯한 한 친구를 흉내 내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수밖에. “머리에 든 게 많다 보니 별게 다 생각나지 않네.” 망각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 착각 혹은 망상인 것 같다.

최근에 픽션과 논픽션, 꿈과 현실이 마요네즈처럼 엉켰던 짧은 순간이 있었다. 단골 카페의 소파에 앉다가 그 푹 꺼진 낡은 소파를 대체할 근사한 소파가 아는 집 어느 방엔가 방치돼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누구 집이었더라? 누구 집? 가물가물하다가 마침내 떠올랐다. 텔레비전의 한 드라마에 나오는 집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한 세계를 재현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한 세계를 온전히 지어낼 수 있으리라.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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