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사람이 하는 거야. 감독은 사람을 잘 골라 잘 부리기만 하면 돼. 작전에 사람을 맞추는 건 나와 안 맞아.”
위기에 처한 팀을 구하기 위해 감독이 쓸 수 있는 대응책은 흔히 두 가지라고 한다. 치밀한 작전을 쓰느냐, 선수를 믿고 경기를 맡기느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 사령탑 김인식 감독은 사람쪽을 택했다. 그리고 한국은 비록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하긴 했지만 파죽의 6연승을 거둬 ‘야구 변방’에서 일약 세계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준결승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이 너무 잘 싸웠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휴먼 베이스볼’을 표방한다. 그의 진가는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이미 빛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화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어냈다. 당시‘기다림의 야구’ ‘믿음의 야구’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리더십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언론들은 한국팀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김 감독의 ‘믿음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그 실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그의 리더십을 조명한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김 감독의 리더십 배우기 열풍이 부는 등‘김인식 신드롬’은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 신드롬에 버금갈 정도다.
김 감독이 WBC 내내 보여준 믿음의 야구는 완벽 그 자체였다. 투수 로테이션과 교체 타이밍은 다른 팀이 보기에 얄미울 정도로 척척 맞아 떨어졌고, 상대 팀 특징에 맞게 절묘하게 꺼내든 용병술 역시 대성공을 거뒀다. 선수의 특성과 기량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직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평범한 진리와 함께, 지도자가 갖춰야 할 궁극적인 덕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김 감독은 1라운드 대만전과 일본전에서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마무리로 기용했다. 선발에 익숙한 박찬호를 소방수로 활용하는 모험을 한 것은 그의 경험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또 2라운드 멕시코전에서 교체 투입한 투수 전병두가 무사 1,2루 위기를 자초했을 때 투아웃을 잡을 때까지 믿고 기다린 뒤 벤치로 불러내는 뚝심을 발휘, 전병두 본인은 물론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믿음 바이러스’를 퍼트리며 팀내 사기를 한껏 올려놓았다.
야구계에서 김 감독은‘재활 공장장’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믿음의 야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김 감독은 한화의 지연규 문동환 조성민 김인철 등 “한 물 간 퇴물 선수들”을 보란 듯이 부활시켰다.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수시로 선수들을 감독 방으로 불러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따뜻한 가슴도 지녔다. 선수들은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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