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잦으면 X싼다’는 속담이 있다. 선문(先聞ㆍ먼저 도는 소문)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로 세상살이에 자주 쓰이는 말이다. “난폭운전을 일삼더니 기어이 사고를 내는구먼”이라고 혀를 차거나, “외야플라이를 자꾸 허용하더니 결국 홈런을 맞아버렸다”고 아쉬워 한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X을 쌌다면 그 전에 (남몰래?) 방귀를 자주 뀌었을 것으로 추정해도 큰 무리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하인리히 법칙’이다.
■ 1930년대 초 미국 한 보험회사의 관리ㆍ감독자였던 H.W.하인리히는 고객 상담을 통해 사고를 분석해 ‘1대 29대 300’의 법칙을 발견했다. 1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 주변에서는 300번의 이상징후가 감지됐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10년간 교통사고 통계를 분석하면 1회의 사망사고에 35~40회 정도의 중ㆍ경상 사고가 발생했으며, 수백 건의 위험한 교통법규 위반사례가 적발됐다. 폭행 강도 살인 등 강력사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일본 도쿄대 공대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 교수는 ‘실패학의 권유’(2000년)에서 한국의 와우아파트와 삼풍백화점 붕괴, 일본 JOC원자력발전소 사고 등을 인용해 이 법칙을 설명했다.
아울러 경미한 사고들에 철저히 대응하고, 앞서 수많은 이상 징후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관리ㆍ감독자의 책임이며, 그래야만 실패를 되풀이 않는다고 권유했다. 수년 전부터 우리 대기업에선 ‘하인리히 법칙’과 ‘하타무라 권유’를 CEO 및 임원들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 한 상품에서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다면 29회의 고객불만(클레임)이 회사에 접수됐을 것이며, 고객이든 사원이든 300번 정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음이 분명한 만큼 그것을 포착하라는 것이다.
■ 사건ㆍ사고나 결정적 피(被)홈런만 이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다. 이해찬 골프게이트나 거물브로커 윤상림씨 사건 등 세상만사에서 다 그렇다. 총리 경질이 불가피해지기 전에 산불골프 홍수골프 등 숱한 ‘경미 사고’가 있었으며, 주변에선 ‘저러면 안 될 텐데, 어째 찜찜하다’는 수많은 이상 징후들을 느꼈을 것이다.
윤씨 사건에서도 ‘검사장의 100만원’과 ‘부장판사의 5,000만원’ 등 경미한(?) 사고들이 있었던 시기를 전후로 부지기수의 법규위반 사례들이 횡행했을 것이며, 검찰이 찾고 있는 ‘윤씨 회계장부’에서 확인될 게 분명하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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