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한반도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결승 한일전의 열기에 빠져 들었다. 축구장 야구장 역대합실 대형식당 등은 이날 응원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졌지만 잘 했다”고 고생한 선수들에게 따뜻한 성원을 보내면서 4년 후를 기원했다. 일부에서는 일본과 3차례나 맞붙도록 돼 있는 대진방식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4년 전 붉은 물결로 뒤덮였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은 이번엔 온통 파란 물결이었다. 서울광장은 휴일을 맞아 다소 쌀쌀한 날씨 속에도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시민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 올랐다.
오전 9시부터 싸이 바다 이선희 등 인기 가수들이 흥겨운 공연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자 시민들은 서울광장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응원가를 부르며 한국팀의 승리를 간절히 염원했다. 경기 시작 시간이 임박하면서 안전펜스 안쪽 응원석뿐 아니라 서서 경기를 관람하는 바깥쪽까지 가득 찼다. 경찰은 이날 서울광장에 3만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정했다.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응원석 앞쪽에 자리잡은 강승혁(34)씨는 “거리 응원의 열기에 동참하기 위해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며 “한국팀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잠실야구장의 열기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경기장 개방 1시간 만인 오전 11시 내야 관객석 1만5,000여석이 시민들로 메워지기 시작해 중계방송이 시작된 정오에는 중계 스크린이 세워진 쪽의 관중석을 일부를 제외하고 3만석의 관중석이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 찼다.
태극전사들을 향한 파란 응원물결은 전국 방방곡곡을 휘감갔다. 부산은 오전 일찌감치 2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사직야구장을 가득 메우자 인근 아시아드주경기장까지 추가로 개방했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대전한밭운동장,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 마산 종합운동장, 창원시청 광장, 강릉 실내빙상장 등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곳마다 수천명씩 운집해 2002년 월드컵의 응원열기를 재연했다. 응원의 함성은 독도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시합이 시작되자 경계근무자를 제외한 20여명의 대원들이 내무반의 TV 앞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경기 시작 후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자 시민들 역시 손에 땀을 쥐며 공 하나하나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1회말 이종범의 첫 안타와 2회초 이진영의 호수비 등 한국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가 이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KOREA’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파란색 응원 막대 물결이 전국을 수놓았다.
7회 일본에 대거 5점을 빼앗기며 패색이 짙어지자 하나 둘 자리를 뜨는 인파가 보이기 시작했고, 8회 일본에 1점을 더 내주자 응원 대열에서 이탈하는 시민들은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끝까지 남아 응원을 계속했다. 경기 종료 후까지 서울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던 광주 박성호(36ㆍ자영업)씨는 “오늘의 승패에 관계 없이 한국 야구는 이미 세계 정상급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며 “한국을 대표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경기 결과와 함께 2002년의 성숙된 시민의식 실종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서울광장과 잠실야구장 관중석 등에는 시민들이 버리고 간 막대풍선과 음식쓰레기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자발적인 수거는커녕 주최측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뜨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 경기장에는 이날 로스앤젤레스, 애너하임, 샌디에이고 등 남부 캘리포니아는 물론 애리조나ㆍ텍사스주 지역 한국 동포들까지 대거 몰려들어 응원전을 펼쳤다.
샌디에이고 한인회 등에 따르면 이날 경기장을 찾은 동포들은 샌디에이고 전체 한인수(3만명)의 80%가 넘는 2만5,000여명에 달했다. 한국이 0대6으로 뒤진 8회초에 비가 쏟아져 경기가 중단됐는데도 상당수 동포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응원가를 부르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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