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A(43)씨는 박사 학위가 없어 고민이었다.
석사 학위만으로 대학원생을 가르친다는 것도 그렇고,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배들이 점점 많아지는 게 늘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 2002년 8월 서울 강남의 R음악원으로부터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팸플릿이 날아들었다. 피아니스트로 꽤 유명세를 탔던 도모씨가 원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내용인즉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음악 명문인 러시아 V대학의 박사 학위를 딸 수 있다는 것. A씨는 방학기간을 이용해 10시간 가량을 R음악원에서 강의를 받은 뒤 10여일 간 러시아를 ‘구경’갔다. 얼마 후 러시아 V대학 명의로 된 연주학 박사 학위가 정말로 나왔다. A씨는 이 학위를 제출해 서울 유명 사립대학 교수로 채용됐다.
각각 S여대와 J대에서 음악 강의를 맡고 있는 B(48), C(38ㆍ여)씨는 이보다 더 심한 경우다. B씨는 러시아 구경도 안 갔고 C씨는 R음악원에서 이뤄지는 형식적인 국내 강의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2,000여만원의 수강료가 좀 아까웠지만 이들 역시 번듯한 V대학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자신의 박사 학위증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러시아어를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에 적발된 ‘외국 학위 장사’는 가히 코미디 수준이었다. 내국인 강사나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 강사 1~2명에게서 10시간 정도 강의를 받은 다음 몇일 러시아 관광을 다녀오면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허영심에 이 음악원을 찾았다가 학위 수료 과정이 너무 허술하고 주먹구구식이라 중도에 포기한 수강생이 나올 정도였다. 논문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통역인에게 대필하게 했고 논문심사는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작곡 전공자가 지휘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따기도 하고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유아음악교육 학위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학위 수여식은 국내 호텔 식당에서 이뤄졌다. 러시아 대학 총장이 러시아에서 학위증 용지를 가져와 R음악원에서 서명한 다음 바로 수여하기도 했다. “그래도 학위는 러시아에서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일부 수강생들이 항의해 러시아에서 다시 학위 수여식을 여는 해프닝도 있었다.
가짜 박사들은 자기들끼리 ‘러시아음악협회’를 결성해 정기모임을 갖고 기념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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