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안타 제조기’ 스즈키 이치로(33ㆍ시애틀)와 ‘한국형 핵잠수함’ 김병현(27ㆍ콜로라도)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8강전까지 잇단 망언과 경솔한 행동으로 이미지에 먹칠을 했던 이치로는 19일(한국시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전에서 3안타를 몰아치며 결승행의 선봉에 섰다. 반면 그 동안 한국 마운드의 허리를 든든하게 지켜오던 김병현은 결승 홈런을 포함해서 3실점 하며 무너졌다. 애리조나 시절이던 2001년 월드시리즈(WS)에서 홈런 악몽에 시달렸던 김병현은 또 다시 ‘큰 경기 홈런포’ 징크스에 시달렸다.
고개 쳐든 천재
이치로는 대회 전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 야구를 넘보지 못하게 해 주겠다”는 오만불손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5일 아시아 라운드에 이어 16일 8강 리그에서도 한국에 패하며 체면을 구겼다. 16일 한국전이 끝난 뒤 이치로는 “내 야구인생에 있어 가장 굴욕적인 날이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치로는 이날 밤새 술을 마셨으며, 이튿날 훈련에도 불참했다. 메이저리그 5년 통산 타율 3할3푼1리에 2004년엔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262개)까지 세웠던 이치로지만 한국에 연패하자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던 것.
경기 전 인터뷰도 거부하며 이를 갈았던 이치로는 한국과의 3번째 대결에서는 3안타로 일본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서재응(LA 다저스)으로부터 안타를 뽑아낸 뒤 도루를 성공한 이치로는 4-0으로 앞선 7회 승리에 쐐기를 박는 적시타까지 뿜어냈다.
고개 숙인 잠수함
김병현은 이번 WBC 들어 왼손 구대성(한화)과 함께 한국팀의 가장 믿을 만한 ‘미들맨’이었다. 앞선 3경기 성적은 4와3분의1이닝 3안타 6삼진 무실점,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김병현은 0-0이던 7회초 무사 2루에 등판, 첫 타자 다무라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불을 끄는 듯했다. 그렇지만 왼손 대타 후쿠도메에게 통한의 투런포를 맞았다. 평정심을 잃은 김병현은 오가사와라에게 몸에 맞는 볼, 사토자키에게 2루타를 맞은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3분의1이닝 4타자 3타수 2안타 1사구 3실점.
김병현은 2001년 WS에서도 팀의 마무리로 나와 두 경기 연속 홈런을 맞고 눈물을 흘렸다. 4차전 3-1로 앞선 8회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9회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투런포, 5차전서는 2-0으로 앞선 9회 스콧 브로셔스에게 투런포를 허용, 주저앉고 말았다.
샌디에이고=이승택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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