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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유작전 '세상과 불화한 영혼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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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유작전 '세상과 불화한 영혼의 순례'

입력
2006.03.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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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초입에 여기저기가 부스러진 커다란 콘크리트 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뱃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밥솥을 질질 끌며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던, 작가의 뉴욕 시절의 퍼포먼스를 크게 확대한 사진이 걸려있다. 그토록 무겁고 회색인 뜰 수 없는 배, 그리고 그 오기 넘치면서도 작고 허약해 보이는 뒷모습, 그것들은 이미 박이소의 삶과 예술에 대해 적지 않은 것들을 대변한다.

박이소, 한때는 박모였고, 본명은 박철호였던 구제불능의 유목민, 조금이라도 더 기어오르려 애를 쓰는 사람들의 한 가운데서 혼자 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공허한 우주를 품고 살았던, 그래서 더욱 어지럽고 외로웠던 예술가가 박이소였다. 2004년 4월, 그는 4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고 2주기를 추모하는 전시가 중구 태평로 로댕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5월 14일까지)

‘세상과 불화했던 단명한 작가’, 이 구릿한 화두가 우리 곁으로 되돌아왔다. 절대미를 추구하다 결국 자신의 그림을 불사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발자크의 프레노페르도, 예술과 삶 어느 쪽에도 안주할 수 없었던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스스로 조국과 종교까지 등지고 유배지를 택해야 했던 제임스 조이스의 스티븐 디덜러스…. 그리고 이 아슬아슬 이어지는 계보의 연장선에 박이소도 있다.

오늘날, 이토록 예민하고 아픈 영혼이 아니라면, 누구라서 자신을 걸고 감히 골리앗 같은 세상과 반목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덩달아 널을 뛰는 우리는 이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대에 살았던 사내로 인해 잠시 잊었던 휴식을 회복한다.

작품을 제작할 때 박이소의 원칙은 그것들이 공사장의 폐기된 것들 이상으로 세련되거나 반짝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 그의 세계는 하잘 것 없는 것들, 부실한 벽 같은 어설프고 약한 ‘버려진 재료들’을 결코 벗어난 적이 없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너무 황당하고 무력할 때”조차 진지한 어조와 탁월한 논증 타령을 해대는 구태의연한 관습 따위를 따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심정에서였다. 대충 하고, 잘못하고, 삐뚤게 맞대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실없고, 썰렁하고, 헛헛한” 방식이야말로 그가 고안해낸 인간적인 예술기법이었다.

뉴욕시절, 박이소는 약소국, 비주류 작가들의 입이 되기 위해 대안공간 ‘마이너 인저리’를 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박이소의 영혼과 육체는 빠르게 쇠약해져 갔다. 아니면, 그가 맞서야 했던 세상이 그만큼 더 강해진 것일까. 단지 싸우는 방식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이 더 이상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부단히 스스로를 부수어 나가는 방식으로의 전환.

박이소를 지나치게 신화화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어느 것에도 중독될 수 없는 영혼의 감각으로, 어느 것에든 중독되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시인쯤으로, 다소 공백을 남겨놓자. 이렇게 하는 것이 그의 영혼의 빛깔에 더 적합할 것이다.

심상용ㆍ동덕여대 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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