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엄마 찾아 삼만리' 다시 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엄마 찾아 삼만리' 다시 보기

입력
2006.03.20 00:00
0 0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동화가 있다. 어린 주인공이 엄마를 찾아 조국인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떠나와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작품이다. 애절한 이야기 전개가 흥미롭지만, 그러면서도 왜 그 엄마는 그리 먼 외국으로 간 것인지 궁금해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동화의 시대 배경은 1880년대이다.

아르헨티나가 선진국이었던 때이고, 임금이 싼 이탈리아의 노동자가 돈을 벌기 위해 남미 대륙으로 향하는 증기선에 몸을 싣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다. 주인공의 엄마가 어린 자식을 두고 이역만리 아르헨티나로 떠난다는 동화의 설정은 이러한 시대상에 근거하였던 것이다.

●노동의 이동시대가 소비 국제화로

사실 흔히 1차 세계화 시대로 불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유럽 지역에서 노동자의 국제이동은 대단히 활발하였다. 이동의 상위국은 유럽의 변방 후진국이었던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었다. 이들 나라에서 미국, 아르헨티나 등 당시의 신흥선진국으로 향한 노동자는 1880년대의 경우 인구 10명 중 1명에 달하였다.

아마도 저임금 국가에서 노동력이 부족한 고임금 국가로 단시간에 이루어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 이동이었을 것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고향에서의 삶이 각박하여 떠나는 노동자의 국제 이동은 그 자체 애달픈 드라마이었지만, 드라마의 끝은 해피엔딩이었다.

국내에 과잉인 노동력을 수출하면서 아일랜드, 스웨덴, 노르웨이의 실질임금은 1870년에서 1914년까지 매년 각각 1.8%, 2.4%, 2.7%씩 증가한다. 영국 등 유럽 중심 선진국의 실질 임금이 같은 기간 연평균 0.9% 성장하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고성장이다.

1차 세계화 시대가 1930년대에 종결되면서 노동자의 국제이동은 위축된다. 그러나 끊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좋은 예이다. 1960년대 독일로의 간호사와 광부 수출, 1970년대 건설인력 중동수출 등은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뒤에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간호사들이 상봉한 자리는 눈물바다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렇지만 그렇게 누구 삼촌과 이모가 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도 중진국으로 성장하였고 이제 선진국을 향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규제가 완화되고 2차 세계화 시대가 열린 21세기, 사람의 이동은 다시 확대되고 있다. 1차 세계화 시대에 대비되는 점은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소비자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귀족 등 일부 특권층에 한정되었던 소비자의 이동이 그 간의 경제성장과 수송수단의 발달을 바탕으로 중산층에게까지 일반화되고 있다. 예전 돈을 벌기 위해 고국을 떠났던 스웨덴과 노르웨이 노동자의 후손들은 이제 돈을 쓰기 위해 해외로 떠난다. 이들이 연간 해외에서 쓰는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3%에 가깝다.

아직은 GDP의 2%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해외소비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왔다. 각종 규제로 레저산업, 교육산업에 비교우위가 없는 우리의 여건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 증가한다고 하여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해외소비 탓 앞서 규제완화를

따지고 보면 소비자로 해외여행 길에 오르기 위해 과거 노동자로 고달픈 여행을 한 것이지만,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아직도 해외소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해외여행 전체를 사치 행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에는 해외교육, 고급관광이 비판의 대상이다.

양극화와 연결시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로 해외여행 길에 오르는 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된다면 올바른 대응은 규제를 풀어 국내 교육과 레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원하는 소비를 못 할 바에야 애초 노동자로 장도에 나설 이유도 없지 않았겠는가?

신인석 KDI 경제전망팀 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