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도, 국민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한국 야구는 세계 정상 수준에 올라있었다. 하지만 이름값, 몸값, 체격, 야구환경, 야구 역사 등 어디를 둘러봐도 한국 야구는 미국 일본에 비해 한 수 아래다.
그런데도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즐비한 미국과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일본을 꺽고 4강까지 올랐다. 세계 야구계에 파란을 일으킨 한국야구만의 힘은 무엇일까.
그런 의문점에 대해 야구 전문가들은 뜻밖에도 선수들간 지연, 학연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국가 대항전인 WBC의 특성상 선수들의 조국애와 함께 ‘형님, 동생’ 하는 끈끈한 정이 몸을 던지는 투혼과 때를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오르는 희생정신, 능력의 120%를 발휘한 눈부신 플레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치명적 약점이 될 수도 있는 팀 구성이 오히려 팀워크을 탄탄하게 하고 선수들을 강한 정신력으로 뭉치게 한 역설적인 현상을 빚어냈다는 분석이다.
36명의 한국 대표팀과 코치진에는 야구 명문고인 광주일고 출신이 무려 7명이 포진하고 있고 경북고, 부산고, 휘문고 출신도 3명이나 된다. 선동열(삼성) 투수코치를 비롯해 이종범(기아) 서재응(뉴욕메츠) 김병현(콜로라도 로키스) 최희섭(LA다저스) 김종국 정성훈(이상 기아) 등 대표팀 주축을 이루는 이들이 광주일고 동문이다. 경북고 출신으로는 유중일(삼성) 대표팀 코치와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 배영수(삼성) 등이 있다. 선수들의 인연을 대학(고려대 9명)과 프로팀으로까지 확장하면 코치와 선수들은 너나 없이 모두 선후배로 얽히고 설키게 된다. 거리낌없이 형, 동생 사이가 되는 것이다.
실제 이 같은 네트워크는 전지훈련서부터 준결승까지 줄곧 한국 대표팀이 끈끈한 조직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게 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여기에 초등학교 선수시절 가슴에 담았던 영웅 선동열, 자신의 우상이자 목표였던 박찬호 등 대선배들과 함께 팀을 이룬 후배들에게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교범이 됐다.
주장 이종범은 선배로서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후배들과 허심탄회하게 상의하며 팀을 하나로 묶을 정도였다. 일본과의 본선 승리 직후 “우리는 하나로 뭉쳤다”는 박찬호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이는 미국 일본 야구팀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화(和)를 강조하는 일본이지만 고교야구 팀만 무려 4,000여개가 돼 한국대표팀과 같은 끈끈함을 가질 수 없다. 엄청난 땅덩어리에 수만, 수천개의 고교ㆍ대학팀을 가진 미국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연, 학연은 자칫 팀 불화, 선수간 불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를 승리의 시너지 효과로 이끈 김인식 감독, 선동열 코치 등의 지도력은 더욱 돋보인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