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숙이 감춰둔 잔인한 기억을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상처는 이미 상흔이 돼버린 후다.‘녹턴’은 그러나 상흔을 다시 상처로 만들며, 바다로 인해 삶을 난파당한 사람들의 네 편의 이야기를 한편의 야상곡처럼 몽환적으로 들려준다.
난파된 페리호에서 살아남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눈 앞에서 침몰해가는 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등대지기, 조난 당한 아들에게 편지를 써 바다에 띄우는 노부부, 동생의 죽음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남자. 이미“누구를 만나도, 무슨 일을 해도 욕구란 것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삶은 평범의 궤도에서 벗어났지만(‘페리의 밤’), 어떤 사라짐의 유일한 증인이 되는 무기력함도 바다에서 그들을 밀어낼 순 없다(‘등댓불’).
작가는“시간은 결국 흘러가고 상처는 아무는 법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바다가 가장 날카로운 암초를 덮어버리는 것과 같다. 바다가 감춘 암초의 존재를 우리는 잠시 잊고 살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물밑에 도사린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놈들이다. 배들이 난파하는 것은 잠시 잊는 바로 그 순간, 그곳에서다”라며 오히려 상처를, 기억을 잊는 순간 다시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에둘러 경고한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긴 하지만 바다에 사로잡힌 아들을 떠나보낸 후에야 부모는 아들이 누구였으며 무엇을 원했는지 알게 되고(‘바다로 보낸 병’), 형은 동생의 부재(不在)로 질투와 시기로 점철됐던 유년시절의 콤플렉스에서 해방된다(‘혼자라면’). 따라서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태도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처연하다.
불행에 체념하는 그 자세가 너무 자연스러워 도리어 부자연스럽지만 이 책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프랑스 작가 세실 바즈브로는‘바다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불길한 운명을 시종일관 숙명으로 치부한다. 눈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쉬이 읽히는 이 짧은 소설은 그 자체로 휴식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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