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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행복했던' 대통령

입력
2006.03.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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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도 시작은 화려했다. 비주류에, 운동권 정권의 등장이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권보다도 극적이었다. 이제 끝 마무리가 어떻게 돼 가는가가 조금씩 비친다. 전망도 해 볼 때가 돼 간다.

지난해 11월 노 대통령이 신임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의 발언들을 다시 들춰 본다. 낮은 국정지지도에 대해 이런 요지의 말들이 있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을 바꿀 것처럼 했는데, 할 말도 없게 됐다.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뭐가 달라졌냐 불만이다. 내 처지에서 보면 많이 달라졌고, 그들의 처지에서 보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권의 시작과 중간 업적에 대한 노 대통령 자신의 인식이 드러난다. 복잡한 평가나 설명이 없이 이 몇 마디만으로도 대통령과 국민 사이가 어떤 주소에 놓여 있는지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대통령 자신의 진단에 의해서이다.

●李 총리 사퇴 후 남은 2년

이해찬 전 총리에 대해 “천생연분”이라고 극찬한 것도 이 자리였다. “문제를 놓고 답을 쓰라고 하면 거의 비슷한 답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는 참 행복한 대통령”이라고 했었다. 그런 총리를 골프 사건 하나 때문에 물러나게 했으니 노 대통령은 지금 무척이나 아쉽고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천생연분이 세상에 둘 셋이나 있을 리도 없으니 이제 어디서 연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분권형 총리가 먼저인지, 이해찬 총리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은 분권형 국정운영의 기조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한다. 천생연분 총리가 아니라도 가능할지 후반기 국정운영의 모양은 미지수다.

분권형 국정은 대통령의 권력을 총리에게 나누어 줘서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는 총리에게 권력이 집중된 결과로 전개됐고, 골프의 비극도 거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리더십 가운데 해피 엔딩이라 할 만한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제 그 사례집에는 이해찬 리더십의 결말도 보태야 하게 됐다.

끝이 안 좋은 리더십의 중요한 공통점들은 대개 파워, 또는 권력을 잘못 사용하거나, 그 힘에 도취돼 교만해진다는 것이다.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고 판단과 분별은 독선적으로 흐려진다. 이해찬 리더십이 정확히 그랬다.

독선과 교만은 외부에 대해 자신을 닫아 버린다. 노 대통령은 “죽는 길로만 갔는데 대통령이 됐다”고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했지만, 그 이후로 부단하게 스스로를 닫아버렸던 데서 지지를 잃었다.

정권을 만들고 지탱했던 운동권 세력이 달려 온 길도 마찬가지다. 인사와 예산, 갖가지 정책수단 등 정권의 전리품을 동원하면서 비주류에서 주류화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거기서 바로 기득권화의 함정으로 빠져든 건 밖으로부터 자신을 닫은 결과이다.

정경유착을 탈피하고 정치의 도덕률을 높였다고 자랑했지만 새 도덕률을 자기들에게 적용하는 진정성은 편하게 잊었다. 노 대통령이 말하던 기득권의 반칙이 골프 사건이고, 이는 이 정권 5년 사(史)에서 그 상징적 증거로 기록될 것이다.

이 정권의 닫힘 현상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진행중인 몇 가지만 들더라도 국민을 향해 열려 있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방선거 자원으로 국무위원들을 ‘간단히’ 차출하는 행위는 정치공학적 선거지상주의 발상의 전형이다.

선거를 앞두고 고건씨와의 연합이나 민주당과의 통합을 천연스레 떠드는 것은 여전히 지역주의를 달콤하게 여기는 닫힌 정치에 갇혀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지역주의 타파가 정치개혁의 핵심 중 하나라고 했던 사람들이었으니 더 그렇다. 한 쪽에선 또 양극화의 문제를 들고 나선다. 그러나 이마저도 ‘20 대 80’이라는 닫힌 양분법을 전파하는 전선으로 보인다.

●닫힌 리더십 버리고 끝마무리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을 꺾은 이종범 선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레임덕이 중첩될 남은 임기 2년, 이런 국민에게 노 정권은 “한 때 행복했다”고 하면 그만일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열어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지 묻고 싶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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