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씨는 첫 소설집‘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 1만원)에서 남보다 반 걸음 앞선 자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반 걸음 느리게 가는 자들의 아름다움을 펼쳐보인다. 눈 밝고 발 빠른 자들이 너무 빨라서 놓치는 것들의 풍성함과 따듯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 공간 여행은 스톱워치를 던져두고 ‘사백미터 마라톤’을 하듯 느리게, 눈 감고 귀를 열고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의 끝에 ‘무용지물 박물관’이 있다.
‘무용지물 박물관’의 ‘나’는 ‘레스몰’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는 남자다. 상호처럼, 적고(less) 작은(small)것을 지향하는, 디자인이든 삶이든 “압축하지 않는 건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다. 그런 ‘나’에게 라디오 PD이자 맹인 라디오방송 DJ인 ‘메이비’는 여러모로 이질적이다.
그 해 말 월드시리즈의 대혈전을 TV로 본 ‘나’는 그 경기를 단 2분만에 ‘압축’해서 설명하지만, ‘메이비’는 “야구장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느낌, 긴장한 선수들의 동작, 파란 하늘 속으로 날아가는 하얀 야구공에 대한 설명”을 20분 넘게 실감나게 묘사한다. ‘중요한 부분에만 밑줄을 그’으며 압축적으로, 거침없이, 그리고 그침 없이 이어지는 시각의 세계가 제약하는 인식의 공백. ‘무용지물 박물관’은 그 공백을 채워주는 청각의 세계다.
‘메이비’는 맹인 라디오 방송에서 비틀즈의 ‘옐로 서브머린’을 들려준 뒤, 난생 잠수함이라는 것을 본 적 없을 청취자들에게 그 형상을 말로 설명한다. 물론 그것은 충실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청취자들은 마음으로 자신만의 잠수함을 그려갈 수 있다. 자신만의 ‘잠수함’들을 모아둔 ‘무용지물 박물관’, “(그 곳은) 바로 눈앞에 있고, 우리는 손만 뻗으면 된다.”
‘사백미터 마라톤’의 화자인 ‘나’의 친구는 400m 육상선수다. 400m 경기에 관한 한 그는 지존이다. 문제는 그가 더 멀리 달리고싶지만 그 이상 달리면 다리가 풀려버린다는 사실. 그의 몸이 400m에 맞게 조련 당한 탓이다. 어느 날부터 그는 느려지기 시작하고, 마라톤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시도한다. 400m 주자가 품은 마라토너의 꿈. 그것은 ‘빠른 스피드’가 아닌 ‘나의 스피드’의 문제이고, 달려야 할 거리에 맞는 스피드의 문제다. 어쩌면 “스톱워치 같은 건 애당초 필요 없는 것이었다.”(256쪽)
작가는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고, 유비쿼터스의 컴퓨터 시스템만 갖추면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는 물질 전능의 신화에 의문부호를 단다. “오차와 오류는 어디에나 있”고 그 작은 오차가 만드는 네비게이션의 오류는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며(‘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 작은 속삭임에서 보안이 새고 “가장 안전한 컴퓨터란 꺼진 컴퓨터이”기 때문이다(‘멍청한 유비쿼터스’).
에스키모는 해변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와 항해의 기억을 더듬어 나무 모형을 깎아 지도를 만들고 그 지도로 하여 “언제나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96쪽)다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해커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컴퓨터 뚜껑을 열게 한 뒤 그 속에 신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119쪽)이라고 한다. 그가 김중혁씨이고, 그가 그간 동거해온 소설 속 인물들이다.
김중혁 씨는 6년 전의 데뷔작이자 작품집의 표제작인 ‘펭귄뉴스’에서 이 지루하고 따분한 세상에서 “우리들의 삶도 리필(refill)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 작품집은 자신의 그 물음에 대한 나지막한 대답들일 것이다.
삶이란 ‘비트’(beat)를 잃어가는 과정이며,‘심장의 움직임 역시 밋밋한 중얼거림으로 바뀔 것’임을 아는 그는, 그리고 한 화자의 말처럼 그것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눈치채버린 자의 저항할 수 없는 슬픔임을 아는 그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가슴을 ‘따끈하게 데워’줄 무엇인가를 찾는다. 그것이 그가 내놓은 ‘무용지물 박물관’이고 ‘펭귄 뉴스’다. 눈 감고 손으로 더듬어야 길을 가르쳐줄 에스키모의 지도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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